경제·금융 정책

[대한민국 생존 리포트 ⑤경제]의무지출 106조→347조...현금지원 줄이고 서비스복지 늘려야

<상> 복지과속...100년 뒤까지 감내할 복지로

서비스복지 강화 땐 고용→성장→분배 선순환 가능

조세부담률 늘려야 복지지출 감당 가능한데 논의 안돼

2022년 후 재정대책 없어...'중부담 중복지' 합의 필요




지난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주요 후보들은 한목소리로 ‘중(中)부담 중(中)복지’를 주장했다. ‘중복지’는 국내총생산(GDP)의 10.4%(2016년 기준)에 불과한 공공사회 복지지출 규모를 최소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1%대) 수준까지 늘리자는 얘기다. 독일(25.8%)이나 스웨덴(27.1%) 같은 고(高)복지 국가 수준까지는 어렵더라도 지금의 낮은 복지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데는 정당과 관계없이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복지지출을 2배 늘리려면 돈이 필요하다. ‘중부담’은 OECD 평균의 76% 수준인 우리나라의 조세·국민 부담률을 높여 그 재원으로 복지를 늘리자는 얘기다. 기존 지출 구조조정만으로는 늘어나는 복지지출을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세금이나 보험료 인상을 통한 국민 부담 증가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당시 대선후보들 모두가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고 인정했지만 내놓은 계획은 천차만별이었다.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는 연평균 24조원, 유승민 당시 바른정당 후보는 40조원, 심상정 당시 정의당 후보는 70조원의 증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문 대통령은 연간 6조3,000억원만 증세로 마련하면 된다고 밝혔다. “복지를 늘리려면 복지와 관련된 공무원과 공공 부문 일자리를 늘리면 된다”는 것이 당시 문 대통령의 주장이었다. 더 많은 복지를 위해 얼마나 돈을 부담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복지 확대를 원하면서도 부담은 더 지기 싫어하는 모순적 인식이 굳어졌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사회보장 대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9.7%가 사회보장 확대에 찬성했지만 세금이나 보험료 추가 부담에는 68%가 반대했다. ’무상복지’처럼 ‘덜 내고 더 받기’를 원하는 태도에 더해 현행 복지사업의 실효성에 대한 국민의 낮은 신뢰도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안상훈 서울대 교수는 “복지에 드는 돈은 누군가 내야 한다. 어떤 복지를 어떻게 늘릴지, 늘린다면 얼마를 어떻게 낼 것인지를 국민들에게 솔직히 얘기하고 함께 풀어가야 하는 이유”라며 “하지만 지금은 여야가 모두 합의도, 검증도 없는 소모적인 현금 복지를 대거 늘리면서 부담 얘기는 슬그머니 감추고 있다”고 꼬집었다.


복지의 ‘양’뿐 아니라 ‘질’에 대한 논의도 아예 전무하다. 아동수당·청년수당 같은 각종 수당과 출산장려금·무상보육 등 개별 복지정책은 파격적으로 늘리고 있지만 복지 시스템의 전체적인 틀을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한 마스터플랜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도 무상교복, 차액 보육료 지원, 산후조리 비용 등 저마다 현금성 지원을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다. 지자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새로 만들거나 변경할 때는 중앙정부와의 중복을 조정하기 위해 협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지만 동의율이 97.8%(2017년)에 달하는데다 지자체가 강행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는 “공적 복지지출을 GDP 대비 20% 수준으로 높이는 것을 넘어 그것을 어떻게 지출할 것인지, 그를 통해 한국 복지국가가 그리고 있는 사회의 질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한시적 현금 지원을 늘리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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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쉬운 현금 복지 확대에 무게가 쏠리면서 선진 복지국가와는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안 교수는 “선진국들은 최근 복지개혁을 통해 ‘복지병’처럼 근로동기를 약화시킬 수 있는 현금 복지를 줄이고 돌봄·간병 등 서비스 복지를 늘리는 추세”라며 “서비스 복지는 일자리 확대에도 효과가 있어 ‘고용-성장-분배’가 선순환하는 복지 시스템이 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는 사이 ‘줄일 수 없는’ 복지 의무지출은 빠르게 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복지 분야의 의무지출은 올해 106조8,000억원에서 오는 2050년 347조7,000억원으로 연평균 3.9%씩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GDP 대비로 따져도 5.7%에서 10.4%로 2배 가까운 증가다. 사정이 이렇지만 문재인 정부가 끝나는 오는 2022년 이후 재정상황은 ‘깜깜이’ 수준이다. 정부는 당초 지난해 7~8월 장기 재정전망을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지방선거와 국민연금 장기추계 결과 발표 연기로 이마저 감감무소식이 됐다.

안 교수는 “복지확대 방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문제는 늘려가는 방식”이라며 “한정된 예산 속에서 지속 가능한 복지 시스템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문가는 “‘무상복지’ ‘선 복지 후 증세’는 조삼모사일 뿐 아니라 미래 후손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안기는 무책임한 거짓말”이라고 질타했다.
/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빈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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