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으로 폐업 위기에 처했던 성균관대 앞 인문사회과학 서점 ‘풀무질’이 서점을 되살리겠다는 청년 3명의 뜻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됐다.
19일 서점 측에 따르면 풀무질은 오는 6월12일부터 전범선(28)·고한준(27)·장경수(29) 씨가 넘겨받아 대학가 인문사회과학 서점으로 간판을 유지한 채 명맥을 계속 이어간다.
풀무질 대표 은종복(54) 씨는 19일 “지난주 젊은 친구들 3명이 찾아와 서점을 인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넘겨주기로 했다”며 “경영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 젊은 사람들이 힘든 일을 해보겠다고 해 걱정도 되지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도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은씨는 서점에 보유한 서적 약 4만권과 내부 집기류 등 일체를 새 주인들에게 그대로 넘기기로 했다. 서점 운영 과정에서 발생한 1억여원의 부채는 자신이 해결할 예정이다.
은씨는 “젊은 사람들의 용기에 값을 매겨주는 셈”이라며 “이들이 나중에 ‘서점 운영을 잘한다. 은종복보다 훨씬 낫다’는 말을 들으면 정말 기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풀무질 운영을 그만두면 제주로 내려가 또 다른 인문사회과학 서점을 열고 소설을 집필하며 지낼 계획이다.
1985년 문을 연 풀무질은 한때 대표적인 대학가 인문사회과학 서점으로 꼽혔다. 1980∼1990년대 출간됐으나 지금은 절판돼 구할 수 없는 서적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점차 낮아지면서 매출이 감소한 끝에 폐업 위기에 처했다.
풀무질 인수를 처음 제안한 이는 전범선 씨다. 록밴드 ‘전범선과 양반들’에서 작곡과 보컬을 담당하는 전씨는 친구 고한준 씨와 함께 ‘두루미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출판사와 연계된 헌책방 개설을 추진하던 중 풀무질이 폐업 위기라는 소식을 듣고 인수를 생각했다고 한다.
출판사 공동 운영자인 고씨가 뜻을 같이했고, 미디어아트 강의를 하며 시를 쓰는 장경수 씨가 동참했다. 셋이 함께 풀무질을 찾아가 은 대표를 만난 뒤 서점을 넘겨받기로 결정했다.
전씨는 “어릴 적 어머니가 춘천에서 헌책방을 운영하셔서 그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언젠가는 출판사와 연계된 인문학 헌책방을 열겠다는 계획이 있었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유학하며 역사학을 전공했다는 전씨는 “영국에는 인문학 중심 서점의 역사가 깊고 지역공동체와 연계가 잘 돼 있어 그곳에서 찾은 즐거움이 많았다”며 “한국에 돌아오니 그처럼 인문학적 깊이나 역사성이 느껴지는 공간이 없었는데, 풀무질이 그런 공간이어서 무턱대고 찾아갔다”고 밝혔다.
이들 3명은 당분간 서점에서 은씨와 함께 일하며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운영 방향을 고민할 계획이다. 풀무질에서 진행해온 인문사회과학 독서모임은 젊은 층을 대상으로 확대하고, 세미나와 같은 행사도 마련하는 등 지역공동체에 기여할 방법도 찾을 생각이다.
고한준 씨는 “‘우리가 이렇게 좋은 책들을 갖고 있으니 너희가 오라’는 식은 이제 불가능할 테니 와보고 싶은 공간이 되도록 인테리어를 바꿀 생각”이라며 “홍보도 적극적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은 서점 인수에 필요한 보증금 1천만원을 마련하기에도 빠듯한 형편이지만, 정부 지원금 신청이나 모금활동 등 난관을 돌파할 방법도 다각도로 찾고 있다. 향후 운영을 본격 시작하면 기존의 일반 서점에 헌책방 성격을 가미해 수익을 늘리는 방안도 생각 중이다.
전씨는 “헌책을 잘 큐레이팅하면 수익률 자체는 훨씬 높을 것인 만큼 헌책 비중을 키우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고, 출판사 운영 경험이 있으니 서점 운영을 잘 기획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모든 독립책방이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인문학적 밀도가 있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공간으로 만들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