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한영일 사회부장 hanul@sedaily.com
“앞으로 우리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기상 현상을 더 자주 맞닥뜨려야 할지 모릅니다. 올겨울 고농도 미세먼지 역시 기상 이변의 영향이 크죠. 계절적으로 바람이 불면서 날려가야 할 미세먼지가 한반도에 정체하는 현상이 잦아진 것입니다. ”
김종석(사진) 기상청장은 최근 서울 동작구 기상청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올해 처음으로 예보 전문직을 만들어 5~7년간 기상 예보에만 전념하는 인력을 30~40명 육성할 계획”이라며 “기상 관측 장비가 생산한 데이터를 정확히 읽어내 예보의 정확도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기상청 역사상 처음으로 ‘예보 전문관’이 도입되면 여름철 게릴라성 폭우처럼 기상 이변에 대한 예보 가능성과 정확도가 향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해 기상청은 현재 직제를 수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김 청장은 “인사혁신처에 해당 안을 제출했고 오는 2월 말쯤에는 결정돼 예보 전문직이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을 위한 인센티브 제도 역시 설계됐다. 기존 예보관 업무는 기상청 내에서 기피 대상이었다. 24시간 교대근무에 예보가 틀릴 경우 전국민적으로 쏟아지는 질타와 스트레스에 상시 노출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0년간 8명의 예보관이 근무 중 발생한 각종 질병으로 사망하거나 휴직했다. 예보 전문직을 위한 인센티브로는 △건강 진료 강화 △수당 인상 △승진 시 가산점 부여 등이 고려되고 있다. 김 청장이 이토록 예보에 집중하는 것은 그 역시 30년 베테랑 예보관 출신이기 때문이다. 공군사관학교 출신인 그는 기상장교에서 시작해 공군본부 공군기상단장까지 역임했다.
예보관 역량 강화 못지않게 기상청은 기상 이변으로 인한 국민의 피해도 줄일 계획이다. 한반도 내 고농도 미세먼지 정체 현상을 줄이기 위해 지난 25일 전북 군산에서 120㎞ 떨어진 서해상에서 실시한 인공강우 실험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실험 장소에 있던 기상 선박에서는 비가 관측되지 않았고 인근 해안가에서 소량의 안개비가 관측됐을 뿐이다. 이 역시 인공강우로 인한 비인지는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실험에 참가했던 김 청장은 “이번 실험은 인공강우 가능성을 검토하고 기술 축적을 위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 청장은 정확한 날씨 예측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측 장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청장은 “다보스포럼에서 얘기했듯이 경제가 발전할수록 날씨와 산업의 연관성은 80~90%에 달할 정도로 밀접하다”며 “기업이 장기 계획을 세울 때 기후 변화를 고려하지 않으면 막대한 손해를 입는 세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상 예보와 삶이 더욱 밀접해지는 데 반해 그동안 기상 분야에 대한 투자는 소홀했던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기상청은 최근 들어 기상 관측 장비 투자에 예산 중 절반 이상을 투입하고 있다. 그는 “최근 10년 동안 기상청 예산 약 9,000억원 중 5,000억원가량을 장비에 투자했다”며 “자동기상관측장비를 전국에 설치하고 기상 항공기와 기상 관측용 선박, 슈퍼컴퓨터 구입 등 기술적 부문에 투자해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상 관측에 대한 투자의 경우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는 “세계기상기구(WMO)가 제작한 전 세계 지상관측 및 고층관측 기상 데이터를 보면 우리나라는 한국 영공과 영토만 겨우 표시된다”며 “미국의 경우 관측 예보의 정확도를 위해 서태평양 바다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관측 장비를 설치해뒀다”고 말했다. 이어 “구름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오다 보니 미리 구름의 움직임과 운형을 정확히 관측하면 향후 예보가 정확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서해상 섬에 위치한 관측 기지와 해상에 떠 있는 부이 등 장비 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는 “기상청 장비 투자의 경우 기상 위성이나 슈퍼컴퓨터 등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부문을 제외하고 나면 풍부한 관측 데이터를 위해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기상청은 관측 장비 보충을 위해 현재 6m 부이밖에 없는 서해상에 10m 부이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기상청은 기상 관측 장비 보충과 같은 하드웨어 요소 못지않게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한창이다. 한국형 수치예보 모델이 그 주인공이다. 현재 기상청은 영국에서 개발한 수치예보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과 기상 환경이 다른 영국의 모델을 쓰다 보니 오보가 잦은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자주 듣는 게 사실이다. 김 청장은 “올해 말에 한국형 수치예보 모델이 완성되면 내년 중반 정도에는 상용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수치 모델의 대외 기술종속을 벗어나고 위험 기상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형 수치예보 모델이 완성되고 후속 사업인 기상재해 사전 대비 중심의 시공간 통합형 수치예보 기술개발까지 진행되면 지난여름 기상청과 국민을 당혹하게 했던 게릴라성 기습폭우 등 기상 이변에 대한 예보 정확도를 높일 수 있게 된다. 김 청장은 “이들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면 ‘내 머리에 비 떨어지는 것을 예보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기상청은 새로운 수치예보 모델을 운영하기 위한 슈퍼컴퓨터 도입도 앞두고 있다. 처리할 자료가 많아지다 보니 연산 능력이 뛰어난 슈퍼컴퓨터가 필요해진 것이다. 김 청장은 “올해 6월까지 슈퍼컴퓨터 5호기 계약을 마치고 전체 슈퍼컴퓨터 시스템의 10%가 올해 말까지 설치된다”며 “내년 12월이면 설치가 완료돼 한국형 수치예보 모델이 본격적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슈퍼컴퓨터 5호기는 기존 4호기 대비 연산 속도가 8배에 달한다. 이는 1초에 무려 2경5,700조번의 연산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6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이번 슈퍼컴퓨터 역시 안타깝게도 입찰에는 모두 외국 업체만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상청 슈퍼컴퓨터는 1호기를 제외하고 2~4호까지 모두 미국업체가 공급하고 있다. 김 청장은 “아직까지 국내에는 대규모 CPU를 생산할 업체가 없는 상황”이라며 “미국과 일본, 중국 등이 이 분야에서 치열한 자존심 경쟁을 벌이고 있는 점에 우리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청장은 한국의 기상서비스 품질이 높아지는 만큼 기상산업 성장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한국의 강수 유무 정확도와 태풍진로 예보 오차는 기상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에 견줘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기상청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강수 유무 정확도는 92.8%로 일본의 89% 대비 3.8%포인트가 높다. 태풍진로 예보 오차의 경우 2018년 기준 한국은 195㎞로 미국 205㎞보다 앞서고 일본 186㎞에 미세하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김 청장은 “국내 기상산업 규모는 수년 전만 하더라도 2,000억~3,000억원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4,000억원대를 기록했다”며 “2013년만 하더라도 국내에 등록된 기상사업자는 200개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522개에 달해 2.5배 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기상산업 발전을 위해 각 산업 분야에 ‘맞춤형 날씨정보’를 제공하는 사업을 제안했다. 농업 분야를 예로 들며 김 청장은 “현재 대추가 많이 나는 충북 보은 지역의 경우 대추 밭에 관측 장비를 설치하고 재배와 수확에 필요한 맞춤형 예보를 제공한다”며 “이런 산업에 기업들이 적극 진출하면 농가 이득이 늘고 기상산업도 성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외에도 WMO나 국제 기상재해 관련 펀드 분야에 우리 기업이 수주에 나서면 기상산업이 클 여력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의 경우 기상산업 분야의 매출이 연 9조원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기상과 관련한 수출을 확대해야 하는 것도 주요 과제다. 국내 기상산업 수출액은 지난해 109억원에 그쳤다. 이는 전체 기상산업 매출액의 2.7%에 불과한 것이다. 그 해법으로 김 청장은 ‘기상장비 인증센터’ 도입을 꼽았다. 그는 “기상청이 해외 원조 사업을 진행할 때 기상 관측 장비도 함께 제공한다”며 “국내에 인증센터를 도입하면 국내에서 만든 장비를 해외로 수출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기상 장비와 관련한 제조업 성장 기반이 조성되는 것이다. 김 청장은 “기상 분야는 성장 가능성이 충분한 블루오션”이라며 “재정적 지원 등 후속 지원만 이뤄지면 충분히 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상 분야 남북 협력 강화에 대한 의지도 내비쳤다. 김 청장은 “기상 분야에서도 남북 간 교류를 준비하고 있다”며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남북 기상협력 자문위원회와 내부 직원으로 구성된 남북 기상 추진단을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남북 기상협력 과제도 발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백두산 화산 활동 가능성에 대한 공동조사 사업이 있다. 김 청장은 “남북 교류가 보다 활발해지면 남북 간 기상 분야의 민간 소통 채널 마련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라며 “남북 기상협력으로 북한의 기상 재해 피해를 줄이고 남북 간 화해 협력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정리=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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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경북 영덕 △1982년 공군사관학교 체계분석학과 졸업 △1987년 영남대 환경공학 석사 △1998년 경북대 천문대기과 박사 수료 △2009~2010년 국방부 국방정보본부 지형기상정책과장 △2010~2012년 공군본부 공군기상단장 △2013~2016년 경북대 천문대기학과 객원교수 △2016~2018년 한국기상산업기술원장 △2018년~기상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