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야당인 민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러시아 기업 3곳에 대한 제재를 해제해 논란이 일고 있다. ‘러시아 커넥션(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수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상황에서 미 재무부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특검수사의 핵심열쇠를 쥔 올리가르히(신흥재벌)와 관련된 기업들을 제재 리스트에서 삭제했기 때문이다. 사상 최장기간인 35일간의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가 시한부 협상 조건으로 일단락된 지 하루 만에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민주당과의 갈등에 기름을 부으면서 미국이 또 한번 셧다운 정국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 재무부는 27일(현지시간) 밤 러시아의 억만장자 올레크 데리파스카와 관련된 세계 2위 알루미늄 제조사 루살을 비롯한 기업 3곳에 대한 제재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제재 해제 대상 기업에는 루살의 모기업 EN+그룹, 전력기업인 유로시브에너고 JSC가 포함됐다.
다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으로 ‘러시아 커넥션’과 사이버테러 배후로 지목된 데리파스카에 대한 제재는 유지됐다. 데리파스카는 지난 2016년 트럼프 대선 캠프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폴 매너포트와 긴밀한 사이로 알려지면서 지난해 4월 루살 등 러시아 기업 12곳과 함께 미국의 제재 리스트에 올랐다.
재무부는 지난해 12월 의회에 루살 등 3개사의 제재 해제 계획을 통보한 바 있다. 재무부는 루살 등이 데리파스카와의 지분관계를 대폭 정리했으며 광범위한 회계감사 등 재무부의 요구를 대폭 받아들여 이번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데리파스카는 미 재무부가 내건 조건을 수락해 EN+ 지분을 70%에서 44.95%로 줄였으며 EN+는 재무부의 요구대로 골드만삭스 임원 등으로 이사회 멤버들을 대거 교체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트럼프 대선캠프 비선 참모를 기소하며 수사 강도를 높이는 상황에서 부적절한 조치가 이뤄졌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한때 기업가치가 92억달러에 달했던 루살은 미국의 제재 리스트에 오른 러시아 최대 기업이라는 점에서 푸틴 대통령을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결정은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지난 17일 제재 유지 결의안을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키며 백악관에 경고 메시지를 날린 가운데 강행돼 민주당의 분노를 사고 있다. 로이드 도깃 민주당 하원의원은 이날 성명에서 “야비한 거래에 대한 하원의 반대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의 증언을 거부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에 대한 편애를 멈추지 않고 있다”고 규탄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이 다음달 15일까지 국경장벽 예산안 협상에 나섰지만 이번 사태가 논의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셧다운 종료 성명을 발표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또다시 셧다운 가능성을 언급하며 민주당과의 혈투를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새롭게 협상단을 꾸린 의원 17명이 협상 타결에 이를 가능성을 50대50 미만으로 본다. 협상이 기대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면서 필요하다면 긴급조치를 꺼내 들겠다고 경고했다.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대행도 이날 CBS방송에 출연해 ‘협상 결렬 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셧다운 조처를 취할 의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며 연방정부 공무원 수십만명이 또다시 대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세계 2위 알루미늄 회사가 제재 리스트에서 빠지자 원자재 시장은 알루미늄 가격이 안정세로 돌아설 것이라며 반색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4월 루살 제재 결정 직후 런던시장에서 7년 만에 최고가로 치솟았던 알루미늄 3개월물 가격은 이날 장 초반 1.4%가량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