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서점, 공공도서관 등 지방의 소규모 강연도 일정이 허락되는 한 많이 찾아가려고 합니다. 대도시·대규모 강연도 필요하지만 지방의 작은 책방에서 마음으로 연대하고 함께하려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치유가 됩니다. 정서적인 공감에 대한 간절함이 큰 사람들끼리 한 공간에서 눈을 마주치며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소중한 의미로 다가오니까요.”
‘거리의 치유자’로 불리고자 하는 정혜신(사진) 정신과 전문의는 지난해 10월 ‘당신이 옳다(해냄 펴냄)’를 출간하고 50여차례의 전국 순회강연을 이어왔다. 이른바 ‘심리적 심폐소생술(CPR) 전국 워크숍’이다. 서울·대구·부산 등의 대도시는 물론 춘천·여주·구미·군산·김해·광주·순천 등 지방의 읍내까지 찾고 있다. 최근 그를 서울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구미에서 강연을 마치고 막 올라와 약속 장소에 도착한 그는 가쁜 숨을 고르며 “이번 책은 ‘심리적 CPR’을 보급하기 위해 7년 만에 쓴 것”이라면서 “더 늦기 전에 우리 사회에 심리적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곳을 찾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은 의사가 환자에게 건네는 처방전이 담긴 것이 아니라 그동안 사람들의 전쟁터 같은 속마음을 접하며 확인한 ‘사람 살리는 힘’의 근원에 대해 온 체중을 실어 쓴 ‘심리적 CPR 매뉴얼북’”이라며 “기존의 치유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비전(秘典)이 담겨 있다. 바로 공감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책은 정신과 전문의로 환자의 질병에 대해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진단과 치료를 위한 처방 내리기에 집중하느라 고통받고 있는 한 인간의 삶을 간과했던 자신의 성찰로 시작한다. 그는 “삶의 어려움과 고통을 증상과 질병으로 바라보는 의학 중심적 시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면서 “트라우마 현장은 전문가 자격증이 무용지물인 곳이다. 게다가 몇 가지 체크리스트 문항만으로 삶의 고통을 우울증이라는 병명 안에 가두고 항우울제를 반복 처방하는 것을 치료라고 한다면 누적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근본적인 치유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과거와 달리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이 낮아졌음에도 병원을 꺼리는 이유는 사람 마음의 복잡한 상처를 단순하게 질병화해버리는 의료계 현실의 탓도 무시할 수 없다”면서 “전문가들도 함께 성찰할 시점이 됐다”고 덧붙였다.
책 출간 후 가장 먼저 강의 요청이 온 곳은 한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대상 토론회였다. 그는 “과거와 달리 경제적으로 안정된 위치에 있는 사람들조차 심리적 불안에 휩싸여 있었고 다행히 그들은 문제를 직시하며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면서 “우리 사회가 그동안 한 인간으로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해도 ‘참고 견뎌야 잘 살 수 있다’는 성장 위주의 논리 아래 인간을 도구로 쓰고 버려왔기 때문이다. 학벌이나 경력 등 외형적인 무엇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탓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존재 자체의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회적 환경이 돼버렸다”고 진단했다.
그가 제시하는 심리적 CPR의 핵심은 공감이다. 하지만 어떻게 공감을 시작할지 난감할 수도 있다. 그는 “누군가가 자기 마음을 말했을 때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너를 위해 참아라’ 등의 바른말, 옳은 말이 때로는 비수가 돼 심장에 꽂혀버리기 때문”이라면서 “섣부른 충조평판을 하지 않는 순간의 정적은 어색하지만 이는 성찰의 순간이며 상대의 마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고 이때부터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고 조언했다.
책에는 작가가 현장에서 확인하고 검증한 치유원리인 공감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며 공감의 엄청난 위력을 보여준다. 이를 ‘적정심리학’이라는 새로운 틀로 소개한다. 그는 “적정심리학은 기존의 의학적 이론을 근거로 한 가성(假聲)이 아니라 동시대 사람들의 고통에 함께 공명하고 치유해나가며 구축한 육성(肉聲)”이라면서 “책을 읽은 이들이 전문가에 기대지 않고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 indi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