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포춘US]2019 투자자 가이드 ¦ 고뇌에 빠진 행동주의 투자자

넬슨 펠츠의 쌍둥이 과제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9년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유명 행동주의 투자자 넬슨 펠츠 Nelson Peltz는 자신의 투자사 트라이언 Trian이 수렁에 빠진 두 대기업 GE와 P&G를 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두 회사는 너무나 심각한 상황이었다. BY GEOFF COLVIN


작년 10월 1일, GE는 14개월 전 임명한 신임 CEO 존 플래너리 John Flannery의 해임을 발표했다. 거의 모두가 이 소식에 놀랐지만, 전설적인 행동주의 투자자 넬슨 펠츠는 예외였다. 빛 바랜 명성의 GE를 집요하게 지켜보던 월가 애널리스트들조차도 플래너리의 갑작스러운 퇴장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펠츠는 알고 있었다. 그의 헤지펀드 업체 트라이언의 파트너 에드워드 가든 Edward Garden이 해임 결정을 내린 GE 이사회 소속이었기 때문이었다. GE는 펠츠의 오랜 성공 커리어 중 최악의 오점이다. 트라이언은 GE 주식 7,100만 주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부채에 대한 연방당국의 수사 소식 이후 주가가 하락하면서, 주식 가치가 3년 전 매입 당시 대비 10억 달러 이상 하락해 50% 가까이 떨어졌다. 펠츠는 플래너리의 빠르고 잔인한 퇴장과 함께 GE에 변화가 다가오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펠츠는 그 누구보다 극적인 변화에 익숙한 사람이다. 회사를 지켜보기만 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 행동주의 투자자들 중에서도 펠츠만큼 많은 변화를 가져온 사람은 거의 없다. 듀폰 DuPont을 다우케미컬 Dow Chemical과 합병한 후, 다시 3개사로 분할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제과·식음료 대기업 크래프트를 크래프트 푸드 그룹 Kraft Foods Group과 몬델레즈 인터내셔널 Mondelez International로 분할하기도 했다. 펩시코의 기업분할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이처럼 큰 그림을 그리는 인물이다.

펠츠는 최근 GE와 그의 또 다른 최우선 과제 P&G에 대해 가장 큰 그림을 그려왔다. 그러나 P&G의 상황은 재앙 수준은 아니다(펠츠의 투자 이후 주가가 소폭 상승했다). GE보다 분명 전망이 밝다. 작년 11월에는 펠츠가 밀어붙인 기업구조 재편을 완화해 실시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현재의 P&G는 펠츠가 원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작년 3월, 펠츠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비용이 들어간 위임장 대결 끝에 P&G 이사회에 합류했다. P&G 주가는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다. 현재 트라이언의 총 투자액 100억 달러 중 P&G 지분가치는 35억 달러로 가장 비중이 높다. 따라서 펠츠가 GE 문제에서 빠져 나오려면 P&G의 실적 개선이 필요하다(펠츠와 그의 사위인 가든은 각각 P&G와 GE의 이사라는 이유로 포춘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GE와 P&G는 모두 트라이언의 훌륭했던 실적에 타격을 입혔다. 트라이언의 한 투자자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트라이언의 연평균 수익률은 무려 11.9%였다. 반면 3년 기준 수익률은 6.5%로 평범하다. 2018년 1~10월 실적은 실망스럽게도 -1%다. 펠츠의 개인적 부와 행동주의 투자자로서의 성공적 평판이 이젠 상당 부분 GE와 P&G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GE와 P&G에서 거둘 성적이 중요한 이유는 두 기업이 펠츠의 최대 고민이라는 점 외에도 여러 공통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GE와 P&G는 100년 이상의 혈통을 자랑하는 명문으로, 세계적 명성을 떨친 미국 기업들이다. 둘 다 절대적 시장지배력을 행사하던 시절에 형성된 독특하고 완고한 기업문화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어느 쪽도 과거의 영광을 유지하진 못했다. 두 회사 이사회에서 모두 활동하고 있는 트라이언은 이런 조직이 무엇을 성취할 수 있을지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펠츠가 애용하는 기법(기업분리, 비용절감, 차입) 외에도, 트라이언은 다른 어느 행동주의 투자자보다 더 심도 있게 경영을 분석하고 있다. 때로는 몇 년이 걸려서라도 경영진의 사업 문제 해결을 돕고 있다. 혁신적 파괴의 위협에 노출된 전통적 강자가 점점 늘고 있지만,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기업에게 자기변신은 그 무엇보다도 어려운 과제다. 트라이언의 성공 여부는 과연 행동주의 투자자나 외부인이 자기변신 과정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펠츠는 평범한 행동주의자가 아니고, 트라이언도 평범한 헤지펀드가 아니다. GE도 평범한 투자처는 아니다. 올해 76세인 펠츠의 행동주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80년대 중반 마이클 밀컨 Michael Milken과 그가 투자한 기업사냥꾼(corporate raiders)들의 전성기가 등장한다. 펠츠 외에도 칼 아이컨 Carl Icahn, 솔 스타인버그 Saul Steinberg, T. 분 피컨스 T. Boone Pickens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당시 분위기와 달리, 펠츠는 그린메일 greenmail에 관심이 없었다. 그린메일이란 기업 지분을 매입한 후, 경영진에게 더 비싼 가격에 이 지분을 매입하지 않으면 인수합병을 통해 경영진을 축출하겠다고 위협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 대신 펠츠는 더 좋은 방법을 포착했다.

근거는 자신의 경험이었다. 1980년대 기업사냥꾼이나 현대의 행동주의자 절대 다수와 달리, 펠츠는 월가 밖에서 사업을 해 본 적이 있었다. 펠츠와 그의 형제 로버트는 가족이 운영하던 식료품 유통업체를 플래그스태프 Flagstaff라는 단체주문 전문 냉동식품 기업으로 키워냈다. 요즘에도 식품업계를 선호하는 트라이언은 웬디스 Wendy’s, 크래프트, 하인츠 Heinz, 펩시코 등 다수에 투자하고 있다. 플래그스태프는 펠츠가 40세 때 파산했지만, 그는 이 경험으로부터 확실한 교훈을 얻었다. 그는 플래그스태프의 CFO였던 회계사 피터 메이 Peter May와 함께 자판기 및 전선 제조업체 트라이앵글 인더스트리 Triangle Industries를 인수했다. 두 사람은 이 기업을 포춘 100대 산업 공룡으로 키워낸 후 1988년 매각했다. 펠츠와 메이는 이후로도 기업의 인수·개선·매각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그들은 지난 2005년 크레디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 Credit Suisse First Boston/*역주: 크레디 스위스 은행의 옛 투자은행 부문/의 투자은행가였던 가든을 세 번째 파트너로 삼아 트라이언을 설립했다. 회사측에 따르면, 전체 수탁고의 75%는 캘리포니아 주 교직원연금(California State Teachers‘ Retirement System)등 기관 투자자가 차지하고 있다. 이 연금은 듀폰과 P&G 사건 당시, 펠츠의 위임장 대결을 지지한 바 있다.

올해 58세의 가든은 지난해 3월 열린 한 투자 컨퍼런스에서 “기업을 수선해서 실적 반전을 이끌어내는 것이 우리 역할”이라며 “우리는 펀더멘털이 훌륭하지만 경영상 과정에서 길을 잃은 기업을 탐색해 사업 정상화를 위한 방안을 찾아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말이 사모펀드처럼 들린다면, 트라이언도 반박하진 않을 것이다. 가든은 “우리는 새로운 자산 클래스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유동적 사모펀드’ 혹은 ‘하이브리드 사모펀드’라 부르고 싶다”고 밝혔다. 트라이언의 목표는 사모펀드처럼 한 기업의 전체 혹은 상당 지분을 인수하지 않고도 사모펀드 수준의 수익률을 달성하는 것이다. 트라이언은 P&G 주식의 1.5%, GE의 1.8%만을 보유 중이다. 트라이언은 경영 개선과 몇 년간의 보유를 통해 레버리지 없이도 고수익을 달성하고, 매매만으론 얻을 수 없는 높은 운용보수를 얻으려 하고 있다.

2015년 봄, 트라이언은 다논 Danone, 패밀리 달러 Family Dollar, 잉거솔랜드 Ingersoll-Rand, 래저드 Lazard 4개 기업에 대한 투자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새 투자처를 적극 모색 중이었다. GE는

GE와 P&G 투자가 문제를 일으키기 전인 2006년, 회의장을 떠나고 있는 트라이언의 에드워드 가든과 넬슨 펠츠, 피터 메이(왼쪽부터).       사진=포춘USGE와 P&G 투자가 문제를 일으키기 전인 2006년, 회의장을 떠나고 있는 트라이언의 에드워드 가든과 넬슨 펠츠, 피터 메이(왼쪽부터). 사진=포춘US



펀더멘털이 훌륭하지만 잠시 정상궤도에서 벗어난 기업이라는 조건에 딱 맞았고, 당시 CEO였던 제프 이멀트 Jeff Immelt도 투자를 원하고 있었다. 이멀트는 2년 전 펠츠에게 최고위 임원을 대상으로 비용절감 관련 강연을 해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었다. 이런 적극적 태도는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트라이언의 투자 대상은 최소한 초반에는 침입자를 쫓아내려는 태도를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유서 깊은 대형 제조사는 펠츠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그런데 2015년 이멀트는 주당 순이익 17센트를 2018년까지 2달러로 높이겠다고 월가에 약속한 상황이었다. 이것이 주효했다. 트라이언은 GE가 2.20달러나 그 이상도 실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되려면 당시 26달러였던 주가는 2017년 말까지 40~45달러로 올라야 했다. 펠츠는 23억 달러 상당의 GE 지분을 매입했고, 이멀트에게 “주당 2달러 이익 공약을 지키지 못하면 책임을 지라”고 요구했다.

그 해 가을, 트라이언은 GE의 전략과 주식을 강력하게 옹호하는 ’백서‘를 발간했다. 81쪽짜리 이 파워포인트 자료에서, 트라이언은 GE에 비용 절감과 일부 경영진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점과 대출을 더 해줄 수도 있다는 점을 적시했다. 그러나 금융부문인 GE캐피털을 대부분 정리하고, 상품보단 서비스 매출에 더 집중하는 등 당시 이멀트가 추진하던 ’사업모델의 대대적 변화‘를 시장이 충분히 인정하지 못했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주장했다. 주가가 오르자, 펠츠는 일부를 매각해 4억 달러 정도를 챙겼다. 돌이켜 보면 현명한 결정이었다. 주가는 계속 올랐고, 금융위기 전 수준을 회복해 2016년 12월에는 32.38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2016년 4분기에 이르자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회사의 변신에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GE가 유입액보다 더 많은 현금을 썼다. 퇴직금 펀드 또한 310억 달러가 더 필요했다. 회사 전체의 잉여현금흐름은 93억 달러 배당금(2015년 기준)을 감당하기에도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전력생산용 대형 터빈을 제조하는 GE의 최대 사업부 또한 예상보다 수주 실적이 저조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들은 반전이 가능해 보였고, 투자자들도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펠츠가 당시 GE를 염려했다면, 위기를 겪고 있는 또 다른 대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과 몇 주 전, GE의 주가가 상승하는 상황에서 펠츠는 P&G 지분 매입을 시작했다. 2017년 초에 이르자 트라이언의 P&G 지분은 33억 달러에 육박해 회사의 최대 신규 투자처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P&G는 펠츠가 선호하는 식품 산업에서 손을 뗀 상태였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구조가 복잡해 대대적 개편이 필요한 위대한 기업이라는 조건에 딱 맞는 상황이었다. 질레트 면도기, 크레스트 치약, 팬틴 샴푸 등 P&G의 대표 브랜드들은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었다. 5대 제품군 모두 경쟁사에게 시장을 상당 부분 잠식당한 상황이었다. P&G의 다른 투자자들은 펠츠를 반겼다. 주식시장 강세에도 몇 년째 답보 상태였던 P&G 주가는 펠츠의 등장과 함께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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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또한 펠츠의 투자를 반겼지만, P&G의 경영진은 달랐다. 회사는 모든 주주에게 감사한다는 내용의 의무적 성명을 발표했지만, 경영진은 외부인의 참견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에 분노했다. 펠츠와 데이비드 테일러 David Taylor CEO의 만남은 양쪽 모두에게 실망스러웠다. 2017년 6월 펠츠가 이사직을 노린다는 소문이 퍼지자 투자자들은 환호했고, 주가는 다시 뛰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P&G 경영진은 이 주가 상승을 펠츠의 도움이 없었어도 자신들의 전략이 잘 작동할 수 있었다는 증거로 제시했다.

2017년 7월 P&G에게 이사 선임 요청을 거부당한 펠츠는 위임장 대결을 선포했다. 많은 비용이 소모되는 힘든 장기전의 시작이었다. 테일러는 이로 인해 경영진의 관심이 분산돼 “우리가 추진 중인 변혁이 궤도를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펠츠는 테일러의 이름을 수 차례 직접 언급하고, P&G CFO였던 클레이턴 데일리 Clayton Daley를 끌어들여 공세에 나섰다. 양측은 이 과정에 무려 1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2개월간의 대결 결과, P&G는 50.01%대 49.99%라는 극히 근소한 표차로 승리했다. 이사회가 펠츠의 요청을 물리치기에는 너무 근소한 격차라고 판단해, 결국 펠츠는 지난해 3월 이사회에 합류할 수 있었다.

세기의 위임장 대결을 벌이면서 다른 일에 집중하기는 힘들지만, 펠츠와 가든은 그래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P&G와의 관계가 한참 나빠지던 2017년 중반, GE의 추락이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투자자들의 신뢰도 흔들리고 있었다. 2018년까지 주당 2달러 이익 달성은 불가능하다는 게 점점 확실해지고 있었다(현재 월가는 GE의 주당 이익을 68센트로 전망하고 있다). GE의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들은 장기 집권을 한 CEO 이멀트의 운이 다한 순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플로리다 주에서 매년 5월 열리는 대형 전자기기 제조사들의 금융계 대상 연례 행사 때였다. 당시 이멀트의 발표를 본 한 참석자는 “그런 모습은 생전 처음이었다”며 “이멀트는 완전히 기가 꺾여 있었다. 그의 눈을 차마 똑바로 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단순하고 기본적인 질문에 속절없이 무너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딱 19일 후, 이멀트는 갑작스럽게 은퇴를 발표했다. 그러자 GE 주가가 20개월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멀트의 약속이 백지화되고, GE에 대한 트라이언의 계획도 처참하게 끝나자 가든과 펠츠는 GE 이사직을 요청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더 강력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펠츠는 P&G와의 위임장 대결로 자신의 맹렬한 투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GE는 그해 10월 위임장 대결 없이 가든을 이사로 선임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GE 관련 뉴스는 ‘나쁜’ 수준에서 ‘최악’으로 치달아왔다. 가든이 이사회에 합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극적인 조치가 발표됐다. 이사회의 대대적 구조 개편이었다. 전례 없는 쿠데타가 일어나 전체 이사 18명 중 절반이 회사를 떠났다. 그 자리를 채운 3명의 신임 이사 중 한 명은 유명 경영인 래리 컬프 Larry Culp였다. 오래지 않아 컬프가 차기 CEO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만약 그렇다면, 혹시 배후는 트라이언이 아니었을까? 공식 입장은 없었지만, 작년 5월 발표한 기업정보 자료 중 GE 항목에서 트라이언은 ‘대너허 Danaher의 전 CEO 래리 컬프 등 신임 이사 3인이 합류했다’고 적시했다. 다른 두 사람의 이름은 생략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내부 관계자들은 컬프가 CEO직에 대한 관심을 극구 부정했다고 전했다. 가능성이 있다는 확실한 시그널이었다.

트라이언의 관점에서 GE의 이사회 개편은 의미 있는 발전이었다. 펠츠가 P&G 이사직을 차지하면서 더 많은 사건이 벌어졌다. 위임장 대결 당시 험악한 분위기도 사라지고 있었다. 테일러 CEO는 성명을 통해 ’우리는 넬슨 펠츠를 존중하며 (…) 향후 이사회 일원인 그의 기여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펠츠도 앞으로 테일러와의 “긴밀한 협조를 고대한다”고 발언했다. 그리고 작년 7월 펠츠가 이끈 첫 변화가 나타났다. 회사보단 개인 성과에 더 비중을 두는 방향으로 고위 임원들의 인센티브 급여 체계를 개편했음이 미 증권감독위원회(SEC) 제출서류 공개를 통해 밝혀진 것이었다. 이는 전형적인 펠츠식 움직임이었다. 11월에는 훨씬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났다. P&G의 사업구조를 6개 사업부로 재편하고, 각 사업부 수장에게 더 큰 권한과 명확한 인센티브를 보장한 것이었다. 이에 투자자들은 환호했다. S&P 500 지수가 3% 하락한 3일 동안 P&G 주가는 2.2% 상승했다. 테일러 CEO는 이에 대해 “지난 20년간 가장 의미 있는 조직개편”이었다고 설명했다.

펠츠가 선택한 두 우량주, GE와 P&G의 현 상황은 이렇다. P&G는 지금까지 엄청나게 고전했고,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높다. 조직개편이 구조적 도움은 되겠지만, P&G의 문제는 그보다 더 뿌리가 깊다. 소형·틈새·지역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전국 및 세계적 브랜드로 대중 시장을 공략하는 P&G의 오래된 전략이 위기에 처해있다. 면도기 시장에서 해리스 Harry’s와 달러셰이브클럽 Dollar Shave Club이 질레트의 도전자로 등장할 때 P&G가 무방비 상태였던 점이 좋은 사례이다. 이는 오랫동안 1등을 달려온 P&G에겐 새로운 경험이다. 광범위하게 볼 때, 그 어떤 의미 있는 변화도 P&G의 기업문화에 의해 가로막힐 수 있다. 181세는 변화에 적응하기엔 너무 많은 나이인지도 모른다.

펠츠가 P&G에 대해 걱정해야 할 시나리오는 또 있다. 그의 등장으로 일단 재앙은 피했지만, 개선이 더디게 이뤄져 수년간 이익 성과가 미미한 상황이다. 그러나 펠츠는 (P&G보다 훨씬 작은) 다른 기업들을 살리는 데 몇 년씩 투자를 했던 이력을 갖고 있다. 이들 기업은 결국 실적 반전을 이루며 더욱 탄탄해졌다. 10년간의 노력 끝에 좋은 결과를 거둔 패스트푸드 체인 웬디스가 좋은 사례이다. 최소한 희망은 있다는 얘기다.

반면 GE에 대한 희망에는 시들어버린 잔해만 남아 있다. 펠츠가 2015년 구상한 비전이 실패로 돌아간 탓이다. 그는 120년 역사를 가진 GE가 디지털 기술과 관련 서비스라는 신세계에 적응할 수 있다고 믿고 거대한 도박을 단행했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GE나 트라이언 경영진 중 누구도 회사의 실행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 GE에겐 그럴 역량이 부족했다. 전력생산용 터빈의 전세계 수요 폭락도 GE와 트라이언을 기습했다. 트라이언은 그래도 살아남을 수 있지만, GE는 그렇지 않았다. 풍력터빈 사업과 장기요양보험 사업의 엄청난 부채가 밝혀지면서 투자자들은 절망에 빠져들었다. 돌이켜 보면 펠츠는 이멀트의 약속을 너무 많이 믿었다. 당시 실적이 부진했던 CEO를 그 정도로 믿은 건 일종의 실수였다.

GE와 P&G에 대한 펠츠의 투자 일대기는 주주 행동주의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비(非)지배지분을 보유한 행동주의 투자자는 기업의 일상적 경영에 참여할 수 없다. 파괴의 시대에 회사들이 직면한 기업문화적 심층과제를 해결하기엔 늘 몇 단계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CEO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행동주의 투자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이다. 결국 진정한 변혁은 행동주의자가 아닌 CEO의 손에 달려 있다. 그래서 행동주의자들은 대체로 구조개편이나 기업분리 등 구조적 변화를 추구한다. 사업부를 독립시켜 ▲좀 더 명확한 인센티브 체계 ▲복잡함의 간소화 ▲선택지 증가 효과를 누리자는 이들의 주장은 많은 경우 성공으로 이어져왔다. 트라이언이 쪼갠 기업 대부분도 분사를 통해 가치를 더욱 높였다. 그러나 이 같은 전략이 오래된 대기업을 유지해 주진 못한다. 안타깝지만, 이런 기업을 더 이상 유지할 이유가 없어지는 시점이 올 수도 있다.

미국의 두 전통 명문 기업에 대한 투자는 트라이언의 실적에 계속 흠집을 내고 있다. 이제는 펠츠의 성공에 종말이 찾아온 것인지, 아니면 등락이 심한 투자업계 특유의 저점에 불과한 것인지가 최대 의문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답은 차차 드러나겠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명확하다. 기업회생을 업으로 삼아온 펠츠와 가든의 성패는 세계에서 가장 바뀌기 힘든 두 거인의 변신 여부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번역 김화윤 whayoon.kim@gmail.co

정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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