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 국가정보원 자금 4억원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김성호 전 국정원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김연학 부장판사)는 31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 등 손실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원장에게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김 전 원장은 취임 초기인 지난 2008년 3∼5월 이 전 대통령 측에 특수활동비 2억원을, 이후 4∼5월 추가로 2억원을 건네 국고에 손실을 끼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다만 김 전 원장은 “마치 모르는 사람의 상가에 끌려가서 강제로 곡을 해야 하는 생소한 느낌”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해 왔다.
법원은 김 전 원장의 혐의를 뒷받침할 직접 증거로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의 진술이 있지만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정원으로부터 자금을 받았던 사실을 모두 부인하던 김백준이 사실대로 얘기하기로 하면서 제출한 진술서에는 이 부분 공소사실 금액이 누락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경험한 사실과 그렇지 않은 것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진술하지 못하고 있고, 다른 경위로 수수한 자금과 착각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 전 원장 측에서 김 전 기획관의 진술을 증거로 사용하는 것을 동의한 것에 대해서도 “공판준비 때부터 진술에 동의하지 않다가 김백준이 노환으로 증인출석을 못 하자 마지 못해 증거 사용에 동의한 것”이라며 “피고인에게 김백준에 대한 반대신문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법원은 김 전 원장의 지시를 받아 2억원을 김백준 전 기획관에게 전달했다는 김주성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의 진술 역시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주성은 최초 검찰 조사 시에는 공소사실을 부인하다가 갑자기 기억이 났다며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을 시작했다”며 이런 진술번복은 실제 자금 교부자를 은닉·비호함과 동시에 자신의 책임을 반감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금을 청와대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김 전 원장이 보인 반응 등에 관해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못하고 있다“며 ”김주성이 김 전 원장으로부터 청와대의 자금 지원 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갖기에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검찰은 이 같은 판단에 ”다수 관련자의 진술뿐 아니라, 이미 선고된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 1심 판결과도 배치된다“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금품수수자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지난 2008년의 2억원은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추가 2억원은 국고손실 혐의만 유죄로 인정받은 바 있다.
재판이 끝난 뒤 김 전 원장은 ”사법부에서 아주 현명하고 정확하게 잘 판단해주셨다“고 말했다.
/노진표 인턴기자 jproh9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