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기업에 대한 주주권을 행사한 것은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 이후 처음이다.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융위원회는 위원장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있는데다 기획재정부 등 부처 차관과 국책연구원, 노조 대표가 대거 포함돼 있다. 위원 성향을 볼 때 어차피 정부의 의지가 그대로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은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하라는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주권 행사에 반대의견이 더 많았던 전문가기구인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의견이 묵살된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이번 결정이 기금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을 오히려 키웠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이날 “중요하고 명백한 위법활동으로 심각한 손해를 끼칠 경우에만 경영권을 행사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준 자체가 애매하다 보니 기업들로서는 눈치를 보느라 투자 등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크다. 과연 국민연금이 국민으로부터 위탁받은 자금을 앞세워 민간기업의 경영에 간섭하는 게 온당하냐는 것도 그렇거니와 노후자금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기업 경영에 개입한다면 득보다 실이 클 것이라는 지적은 새겨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연금의 공정하고 투명한 운용구조다. 정치적 입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율성과 독립성을 높여 시장의 신뢰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러자면 기금운용위를 복지부에서 분리하고 경영권 행사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국민연금이 수익성을 제쳐놓고 정치논리에 휘둘린다면 국민 노후자금 관리는 물론 경제 전반에 더 큰 화를 부를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