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쩐씨·뮬러씨·서촌씨, 이것도 한국 성씨랍니다 [토요워치-개姓시대]

귀화자에 年 7,100건씩 창성창본 허가

김·이·박·최·정 순으로 많이 선택하지만

레·팜·에 등 외국이름 한글자만 따기도

대마도 尹·독일 李·구리 申·몽골 金 등

대부분 거주지나 연고지 본관으로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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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짱·뮬러·서촌·타블로·알렉산더클라이브대한’

이 가운데 한국 대법원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오른 성씨는 어떤 것일까. 정답은 전부다. 귀화한 외국인들이 새로 만든 성씨들이다.


한때 황보·제갈·사공·독고·선우 같은 두 글자 성씨를 가진 친구를 처음 보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저마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간 1만명 내외의 귀화자 대부분이 한국식 이름을 새로 만들면서 최근에는 더욱 이색적인 성씨가 대거 등장하고 있다. 이미 5명 이상인 두 글자 한자 성씨만도 등정(藤井)·망절(網切)·무본(武本)·어금(魚金)·황목(荒木)씨가 새로 나타났다.

1일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귀화자에 대한 창성창본(성과 본을 새로 짓는 것) 허가는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연평균 7,113건에 달했다. 이 기간 귀화자가 연평균 1만798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3분의2가량이 새 성본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결혼이주민 등 귀화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은 대한법률구조공단과 협력해 한국식 이름 변경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돕기도 한다.

0215A02 인구수


2008년 호주제 폐지 이후 법원은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으면 귀화자의 창성창본을 허가하고 있다. 내국인의 경우는 가족관계등록부가 없는 경우에만 창성창본이 가능하다. 다만 귀화자가 ‘안동 김(金)씨’처럼 기존에 있는 성본을 신청해도 법원에서 허가하는 경우가 있어 허가 숫자만큼 새로운 성본이 생기는 건 아니다.

창성창본하는 성씨는 2000년대 들어 급증했다. 통계청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성씨는 2000년 728개에서 2015년 5,582개로 7.7배나 급증했다. 이 중 5인 이상인 성씨는 530여개에 불과하다. 한자 없는 성씨도 2000년 298개에서 2015년 4,075개로 13.7배 늘었다. 이는 대부분이 귀화자라고 통계청은 설명한다. 인구주택 총조사는 5년마다 시행되지만 성본은 15년마다 진행된다.


귀화자들은 어떤 성씨를 선호할까. 사실 귀화자들이 많이 택하는 성씨는 ‘김·이·박·최·정’ 순으로 다수의 성씨 순서와 일치한다. 본국의 성 대신 배우자의 성을 따르는 경우도 많다. 이는 비교적 튀지 않고 부르기 쉬운 이름을 고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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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외국 이름을 그대로 등록하는 성씨도 적지 않다. 여기엔 레·팜·쩐·에·짱 등 외국 이름의 한 글자를 따 성으로 삼는 경우가 있고 두타·코이·타블로·하질린·스룬·무크라니·앙드린카·파피오나·즈엉·뮬러 등 외국 성을 그대로 사용하는 사례도 있다. 서촌(西村)·석원(石原)·신곡(新谷)처럼 일본식 성을 우리 발음대로 신고하기도 한다. 이외에 귤·깡·벌·떵·흰·곰·굳·길란처럼 다소 생소한 발음의 성씨도 눈에 띈다. 또 ‘프라이인드로스테쭈젠덴’ ‘알렉산더클라이브대한’같이 매우 긴 성씨도 등록돼 있다. 위승용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어떤 성씨로 살지는 개인의 인격권과 관련된 결정이기 때문에 판사는 보통 글자 수를 제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씨뿐 아니라 성씨 앞에 붙이는 본관도 귀화자가 정하기 때문에 성씨별 본관은 더욱 다양해졌다. 실제로 본관별 성씨는 2000년 4,179개에서 2015년 3만6,744개로 증가했다. 1985년에서 2000년 사이에는 11개 느는 데 그쳤었다.

귀화자들은 주로 자신이 거주하거나 연고가 있는 지역을 본관으로 삼는다. 지역 단위는 광역시부터 군·면까지 다양하다. 케냐 출신인 청양군 소속 마라토너 에루페는 ‘오직 한국을 위해 달린다’는 의미로 오주한(吳走韓)이라고 개명하며 본관을 청양으로 정했다. 지난해 중순 라건아(羅健兒)로 개명한 미국 출신 국가대표 남자농구 선수 리카르도 라틀리프(현대모비스)는 라틀리프의 첫 글자 ‘라’를 성씨로 삼고 본관은 용인으로 했다. 귀화 신청 당시 소속팀인 서울 삼성의 클럽하우스가 용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족이 많이 모여 사는 구로와 영등포를 본관으로 삼은 김(金)씨는 2015년 기준 각각 110명, 99명에 달했다.

대마도 윤씨, 몽골 김씨, 태국 태씨 등 자신의 출신 국가를 본관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유명인 중에는 독일 이(李)씨인 이참 전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창성창본 허가 내역을 보면 김씨는 야로·치평·매화, 박씨는 비전·장계·광활, 이씨는 계곡·하빈·비봉 등을 본관으로 허가받았다. 또 행정수도인 세종시를 본관으로 택한 성씨는 김·이·원·오씨가 있었으며 길·소·지·반·호·연씨는 조선왕조의 수도인 한양을 본관으로 하기도 했다.

다만 새로운 성본이 만들어지지만 성씨별 비중 순위는 굳건하다. 10대 성씨의 인구 비율은 2000년 64.1%에서 2015년 63.9%로 0.2%포인트 감소하는 데 그쳤다. 2015년 기준 성씨 비중은 △김(金) 21.5% △이(李) 14.7% △박(朴) 8.4% △최(崔) 4.7% △정(鄭) 4.3% △강(姜) 2.4% △조(趙) 2.1% △윤(尹) 2.1% △장(張) 2.0% △임(林) 1.7% 순이었다.

성씨본관별로 따지면 △김해 김(金) 446만명 △밀양 박(朴) 310만명 △전주 이(李) 263만명 △경주 김(金) 180만명 △경주 이(李) 139만명 △진주 강(姜) 97만명 △경주 최(崔) 95만명 △광산 김(金) 93만명 △파평 윤(尹) 77만명 △청주 한(韓) 75만명 순이었다. 10대 성씨본관이 차지하는 비율은 35.7%, 20대 성씨 본관의 비율은 46.4%였다.


조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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