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들어 주식시장 회복에도 부자들이 증시 탈출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유층이 주로 가입하는 주식형 사모펀드의 자금 유출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인데 반대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공모펀드 투자금은 늘고 있어 주목된다.
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한 달 동안 국내 주식형 사모펀드에서 4,737억원의 자금이 순유출됐다. 이는 1개월 기준으로 지난 2016년 3월 이후 가장 많은 금액이 빠져나간 것이다. 국내 주식형 사모펀드로의 자금 유입은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 연속 순유입세를 보이다 증시가 급락한 12월 2,688억원 순유출로 돌아섰다. 그리고 새해 들어 1월 코스피지수가 8.02% 반등하는 가운데서도 자금 유출 규모는 더 커졌다. 최소 가입금액이 1억원 이상인 사모펀드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부자들이 최근 증시 회복에도 올 한 해 불확실성이 크자 주식 투자를 줄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부자들이 주식 비중을 줄이는 대신 투자를 늘린 것은 채권과 부동산이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채권형 사모펀드로 지난달 30일 기준 1조1,346억원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같은 기간 국내 부동산 사모펀드 설정액도 2,715억원 늘었다. 사모펀드 투자금 변동에 대해 금융지식 수준이 높은 부유층들이 한발 앞서 자산 분배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연초 증시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기는 했지만 올해 거시경제에 대한 불안한 전망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주식 투자를 줄이는 게 현명하다고 부자들이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해외 주식형 사모펀드에서도 지난달 1,403억원의 자금 순유출이 발생했다.
반면 자산가와 달리 일반 투자자들은 펀드시장에서 국내 증시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사모펀드와 달리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로는 지난달 30일 기준 한 달 동안 3조8,033억원의 자금이 들어왔다. 이는 지난해 12월(1조1,586억원)보다 세 배 넘게 투자 규모가 늘어난 것이다.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는 지난해 10월 이후 4개월 연속 자금 순유입을 이어오고 있다. 공모펀드는 사모펀드와 달리 가입금액에 큰 제약이 없어 금융자산이 많지 않은 일반인들도 투자가 가능하다. 지난달 해외 주식형 공모펀드로도 947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일반 투자자들이 부자들과 달리 새해 증시 상승에 베팅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연초 예기치 않은 강한 반등세로 상반기 증시 랠리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기업 실적 악화 우려 등 경기 악재가 여전히 도사리고 있어 위험자산을 서둘러 늘리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는 견해도 나온다. 정현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성장성 자산인 주식에 대한 입장을 기존 비중 축소에서 중립으로 상향 조정한다”면서도 “그러나 경기 모멘텀과 성장성 자산의 중기적인 추세 회복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