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콜라텍서 춤추고 극장서 영화보고… 명절스트레스 푸는 중장년층

명절 내내 가족? 옛날 얘기

송해도 93세…요즘 노인은 정정

낭만극장, 평소보다 300명가량 늘어

돈 없고 가족 충돌 피하려 탑골공원 가기도

설 연휴 마지막날인 6일 서울 청량리의 한 콜라텍에서 중장년층 100여명이 춤을 추고 있다./한민구 기자설 연휴 마지막날인 6일 서울 청량리의 한 콜라텍에서 중장년층 100여명이 춤을 추고 있다./한민구 기자



“명절이라고 가족하고만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이제 옛날 얘기지. 어제는 같이 차례 지냈으니 오늘은 각자 시간을 보내는 거야.”

설 연휴 마지막 날인 6일 오후 서울 청량리역 인근 성인 콜라텍, 보랏빛 조명 아래에 50대 이상 중년 남녀 100여 명이 무대에서 음악에 맞춰 흥겹게 춤추고 있다. 이날 콜라텍을 찾은 댄스강사 출신의 김모(57·여) 씨는 “명절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러 연휴 마지막 날에 오는 사람이 많다”며 “여기 올 생각에 다들 명절 내내 고생을 참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며느리 등 젊은 사람들만 명절 스트레스를 느끼는 게 아니다. 중장년층도 명절 스트레스를 겪는다. 가족과 북적북적 명절을 보낸 후 느끼는 공허함, 명절 준비과정에서 느낀 가족 간 갈등 등을 풀기 위해 중장년층이 콜라텍, 극장, 공원 등으로 나서고 있다.

혼자 콜라텍을 찾은 김모(65·남) 씨는 “집에 가도 가족들과 오순도순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대가족 개념은 없어지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강모(69·남) 씨 역시 “가족을 등한시하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니다”며 “오전 중엔 가족들이랑 있었고 3~4시간 여유를 내 운동하러 온 것”이라고 언급했다.

청량리, 종로 일대 성인 콜라텍은 대개 입장료, 옷 보관료 등으로 1,500원가량 받고 있다. 경제적 부담 없이 중장년층이 놀기에 안성맞춤인 셈이다. 남편과 함께 청량리의 한 콜라텍을 찾은 70대의 중년 여성은 “건강 삼아 (콜라텍에) 온다”며 “송해 나이가 93세다. 요즘은 노인도 정정하다”며 콜라텍을 방문한 이유를 설명했다.

설 연휴 마지막날인 6일 서울 종로구 낭만극장에서 중장년층이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김인엽 기자설 연휴 마지막날인 6일 서울 종로구 낭만극장에서 중장년층이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김인엽 기자


콜라텍과 함께 설 연휴기간 중장년층으로 붐볐던 곳으로 ‘낭만극장’도 있다. 낭만극장은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한 극장으로 노인들을 겨냥해 2,000~3,000원에 고전 영화를 상영한다. 평소에도 영화를 보러 오는 중장년층이 많지만 명절 기간 더 증가한다는 게 극장 측 설명이다. 김종준 낭만극장 대표는 “평소 700~800명가량 방문한다면 올해 설 전날과 당일 1,000명이 극장을 방문했다”며 “요즘은 명절이니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인식이 사라졌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설 연휴 기간 극장을 찾은 유모(76·남) 씨는 “(노인들에겐) 공휴일이 제일 힘들다. 복지관 같은 데 다 닫으니까 노인들이 애로사항이 많다”면서 “손자 자식들에게 용돈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최신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어려운 사람들은 낭만극장에서 영화를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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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당일인 지난 5일 중장년층들이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한민구 기자설 당일인 지난 5일 중장년층들이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한민구 기자


콜라텍, 극장도 가지 않는 중장년층들은 공원으로 모였다. 설 당일이었던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는 서른 명이 넘는 노인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자신의 군대 시절 이야기를 하던 현모(87·남) 씨는 “명절이라고 집에만 있으면 가족들이 싫어한다”며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이렇게 나와서 이야기하는 게 좋다”고 했다.

설날에도 공원을 찾는 이유는 저마다 달랐지만 가족과 함께 하기 불편하거나 가족이 없어서인 경우가 많았다. 아들·며느리와 갈등으로 싸우는 꼴 보기 싫어서, 손자·손녀에게 세뱃돈 줄 돈이 없어서 이들은 공원으로 나섰다고 입을 모았다.

“노인이 갈 데가 어디 있어, 바둑이나 두는 거지. 가족이 있는 사람은 잠깐 나와서 놀고 가지만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아침 8시부터 컴컴해질 때까지 놀고 가는 경우도 많아”(탑골공원에서 70세 김모 씨)

/전희윤·김인엽·허진·한민구기자 heeyoun@sedaily.com

전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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