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밥값만큼 일하자

한기석 논설위원

뭔가에 미쳐본 기억 아득해

열정은 타의로 만들수 없는것

재미없는데 열심일 필요 없어

주눅들지 말고 밥값 충실하길

논설위원



“너의 끝이 어디인지 알아야 해. 뭔가에 미쳐 끝까지 가본 적 있니.” 입시상담 선생님은 올해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아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산 아들에게 대학에 가고 싶으면 이제는 공부해야 한다는 뜻으로 얘기한 건데 정작 반응한 사람은 요즘 삶이 재미없는 나였다. 고3 여름방학 때 당시 최고 인기 게임인 갤러그에 푹 빠졌다. 잠자리에 들면 천장에서 마지막 남은 갤러그 나방 한 마리가 갈지자를 그리며 내려오곤 했다. 갤러그는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살아남으면 처음 스테이지로 돌아가는 대신 속도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빨라진다. 그런 비밀을 알아낸 것은 그 일대 오락실에서 내가 처음이었다. 그때 이후 뭔가에 미쳐 끝까지 가본 기억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칠 만큼 재미있고 끝까지 가볼 만큼 궁금한 일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그런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잠깐. 왜 끝까지 가봐야 하지. 뭔가에 미치지도 않았는데 끝까지 가보는 것은 재미없는데 말이다.

사실 우리는 말로는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다면서도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직장에서 동기에게 치이고 마침내 후배에게까지 추월당하는 것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자. 다달이 받는 월급이 좋을 뿐 일에는 도무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당신을 충분히 이해한다.


“야구를 생각하지 않은 유일한 시간이 있다면 마운드에, 그리고 더그아웃에 있을 때일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선동열 국가대표 야구 감독이 감독직을 사퇴하는 기자회견문에 나온 말이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공을 만지기 시작한 이래 눈을 뜨자마자 야구를 생각했고 밥 먹을 때도 잘 때도 꿈속에서도 야구만을 생각하고 살아왔다. 이 정도 할 때 우리는 비로소 뭔가에 미쳐 끝까지 가봤다고 인정할 수 있다. 선 감독이 자나 깨나 야구만 생각하며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야구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선 감독이 야구를 할 때 느꼈던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굳이 최선을 다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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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끝난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한국팀이 얻은 8강 진출이라는 결과는 최선을 다하지 않은 선수들이 만들어낸 그나마 최선의 결과였다. 국가대표 경기 외에는 관심이 없는 나 같은 문외한도 우리 선수들이 열심히 뛰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아시안게임에는 있던 군대 면제라는 동기부여가 아시안컵에는 없었던 영향이 컸다. 그들을 비난할 이유는 전혀 없다. 잘못은 적절한 동기부여를 하지 못한 쪽에 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노력해라’ ‘최선을 다해라’라는 덕목에 반기를 든다. “항상 노력하고 이미 최선을 다했는데 여기서 뭘 더하라는 거냐”라고 되묻는다. 그는 열심히 살지 않기로 결심했고 그래서 다니던 회사도 부업도 그만두고 빈둥빈둥 논다. 그는 뭔가에 미쳐 끝까지 가보는 것을 열정이라고 표현한다. 열정은 스스로 일어나지 타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열정까지 요구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한 선배는 후배들에게 항상 밥값을 하라고 주문한다. 어떤 때는 밥값만 하라고 하고 어떤 때는 밥값은 하라고 한다. 어떤 직장이 됐든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사람은 밥값만큼은 해야 한다. 고용주가 주는 밥값보다 일을 덜 한다면 그는 밥값을 받을 자격이 없다. 밥값 이상으로 일하기를 원하는 고용주가 있다면 그는 이른바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사람이다.



이번 설에도 많은 사람이 고향에 다녀왔다. 온데간데없는 5일 연휴를 뒤로하고 출근하니 해야 할 일이 수북하다. 자기 일이 진정 재미있어 미칠 것 같은 사람은 온갖 열정을 들여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면 된다. 자기 일이 그다지 재미없는 사람은 더도 덜도 말고 정확히 고용주가 주는 밥값만큼 일하면 된다. 사장님은 연초 시무식 때 아마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라며 최선을 다하라고 주문했을 것이다. 그런 주문에 주눅 들지 말고 오직 밥값에 충실하자. /한기석 논설위원 hanks@sedaily.com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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