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설자리 잃어가는 K패션] 사라진 '뉴페이스'...짧아진 유행·'3직'에 패션 성공공식 깨져

로드숍 위주 성장·늦은 온라인 대응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에 방향 잃어

기존 기성 브랜드들 점차 밀려나

동대문, 2·3차 협력업체까지 휘청

"유행 3년은 간다" 물량 2배 늘려

예상보다 덜 추운 날씨에 판매부진

롱패딩 주력 아웃도어 매출 직격탄




# “화승만 문제일까요. 그동안 아웃도어 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였지만 최근 2년 반짝한 ‘롱패딩 특수’로 먹고산 거죠. 올해 롱패딩은커녕 숏패딩도 생각보다 잘 안 팔렸는데 내년에 날씨가 도와준다고 해도 잘 팔릴 거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2월이나 늦게는 3월까지 재고 부담을 털어내지 못하면 제2·제3의 화승이 나오지 않으란 법이 없습니다.” 한 아웃도어 브랜드 관계자는 화승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데 대한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최근 몇 년간 매출 부진을 겪던 화승은 올겨울 시즌을 앞두고 미리 생산한 롱패딩 등 다운 제품의 매출이 부진하면서 현금 흐름에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노 세일’ 정책을 고수하며 재고를 털지 않았다. 협력업체에 지급할 대금을 마련하지 못하자 결국 지난달 31일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고 2차 협력업체 도산 우려도 낳고 있다.


업계는 비단 화승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토종 패션 브랜드 대부분이 침체된 패션 시장 속에서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에 방향을 잃었다는 것. 방향을 잃은 가운데 유행 아이템이 생기면 앞다퉈 물량을 찍어내다 이 같은 사태가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패션 성공 공식 깨진 지 오래…자취 감춘 ‘뉴페이스’=패션 업계에서는 최근 몇 년간 신규 브랜드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가뭄에 콩 나듯 신규 브랜드를 론칭하지만 대부분 기존 브랜드로부터 나온 파생 브랜드이거나 해외 브랜드의 라이선싱 사업이 대부분이다.

이는 신생 브랜드의 성공 공식이 깨졌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3년·300억원’이라는 공식을 지키기만 하면 됐다. 새로 만든 브랜드가 손익분기점을 달성하기까지 3년의 시간과 300억원의 홍보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300억원에는 지상파 3사 광고비, 백화점과 로드숍 점포 오픈 비용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최근 지상파 3사의 시청률이 떨어지고 소비자들이 온라인으로 몰리면서 이 같은 공식이 무너졌다. 지상파 외에 케이블·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널 등으로 돌려 홍보를 해도 같은 비용 대비 효과는 줄어들었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밀레니얼 세대들을 공략하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패션 대기업 관계자는 “새로운 패션 브랜드가 생기는 데 불과 몇 개월밖에 안 걸리는 현 상황에서 3년이라는 정착 시간도 매우 긴 시간”이라며 “소비는 점차 양극화되고 중간에 낀 기성 브랜드들은 직접 생산이나 직수입은 재고 처리 비용 문제로 라이선싱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기성 브랜드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면서 2·3차 협력 업체뿐 아니라 내수 의존도가 높아진 국내 의류의 메카인 동대문도 휘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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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패딩’에 발목 잡힌 아웃도어, 매출 엔진 잃었나=최근 2년 동안 롱패딩은 아웃도어뿐 아니라 패션 브랜드의 효자 상품이었다. 재작년 유행의 불씨를 지피고 지난해 절정을 찍은 롱패딩이 올해에도 열풍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유행이 3년은 간다”는 패션 업계의 암묵적인 공식 때문이었다. 해외 브랜드들이 숏패딩을 내놓고 있던 사이 국내 브랜드는 시장을 잘못 예측했다. 디스커버리·K2·블랙야크 등 주요 업체들이 모두 많게는 두 배까지 롱패딩 물량을 늘렸다.

하지만 패착이었다. 예상보다 덜 추운 날씨에 해외 프리미엄 패딩에 밀려 매출은 감소했다. 이베이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월 옥션과 G마켓의 패딩 매출은 지난해보다 각각 20%, 22% 줄었다.

때문에 과거 ‘롱패딩’ 덕에 가장 많이 성장한 업체로 꼽혔던 F&F(디스커버리)의 지난해 영업실적은 6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7%)했다. 화승과 같은 상황이지만 여전히 ‘노 세일’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F&F의 한 관계자는 “2월에 날씨가 추워질 수도 있어 이를 재고로 보지 않고 있다”며 “올해는 다운재킷보다 계절을 덜 타는 신발류를 킬러 아이템으로 내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3直(직진출·직구·직매입)’에 허우적=최근 해외 브랜드들의 직진출도 이들의 설 자리를 빼앗았다. 최근 명품 브랜드 ‘델보’ ‘지방시’뿐 아니라 프리미엄 여행 가방 브랜드 ‘리모와’, 신발 브랜드 ‘골든구스’, 중저가 시계 브랜드 ‘다니엘웰링턴’ 등이 직접 둥지를 튼다고 선언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해외 브랜드들의 국내 직진출 공세는 소비자들의 선택지를 다양화할 뿐 아니라 기존 패션 업체들의 직수입·라이선싱 사업의 폭도 점차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이 토종 브랜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직구를 통해 다양한 브랜드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해외배송 대행업체 몰테일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카테고리 가운데 의류·패션잡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65%로 전체의 3분의2에 달했다. 국가도 다양해져 미국·독일·일본뿐 아니라 중국에서 저가의 의류를 직구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소비자들의 직구 수요에 맞춰 백화점도 기존 브랜드 매장을 없애고 직매입 매장을 점차 늘리고 있다.


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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