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발생한 ‘발사르탄’ 사태를 계기로 복제약(제네릭) 개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방침인 가운데 이에 따른 제약업계의 구조조정이 촉발될 가능성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실제로 제네릭 개발에 진입 장벽을 세울 경우 개발 비용을 댈 수 없는 다수의 중소형 제약사들이 퇴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규제 도입이 손쉽게 제네릭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은 뒤 오직 리베이트 제공에만 의존하는 현 제약업계 관행을 근절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식약처와 보건복지부,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제약사들이 공동 생물학적 동등성(생동성) 시험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중이다. 식약처는 이르면 이달 중 복제약 개선안을 통해 생동성 시험 변경 내용을 밝힐 예정이다.
복제약은 품목허가를 받기 위해 오리지널의약품과 흡수 및 효과 등의 차이가 균일한지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생동성 시험을 진행한다. 공동 생동성 시험은 2개 이상의 제약사가 공동으로 비용을 대 시험을 진행하는 것으로 2011년 규제가 풀리면서 참여 제약사 수의 제한이 없어졌다. 수십여개의 제약사가 모여 같은 제네릭을 개발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로 인해 복제약이 급증해 2001년 186종이던 것이 지금은 1,000여종에 달한다.
공동생동제도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은 고혈압 치료제 원료로 쓰인 ‘발사르탄’에 발암물질이 발견되면서부터다. 국내 100종이 넘는 복제약들이 문제의 원료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무분별한 공동생동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 수치는 캐나다(28종), 영국(8종), 홍콩(2종), 일본(1종)에 비해 매우 높다. 특히 공동생동 제도를 통해 출시한 복제약 중 다수가 제약사의 리베이트에 의존해 연명하며 시장 질서를 교란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중소제약사들이 공동생동 제도 제한을 반대하는 이유는 이들 제약사 중 대부분이 연구개발(R&D) 인력 및 자금 부족으로 생동시험을 독자적으로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 제약사들 중에는 R&D 인력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잦다”며 “복제약은 어느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더라도 의약품의 구조나 효능이 똑같은 만큼 R&D는 외부 업체에 위탁하고 영업사원들의 리베이트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유지한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이들 업체 중 약을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공장조차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외부 업체가 생산하는 약물을 이름과 포장지만 바꿔 시장에 각기 다른 약으로 유통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부가 공동생동제도의 정비를 고민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아울러 리베이트에 드는 비용을 R&D에 투자토록 해 K바이오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실제로 리베이트가 이뤄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제약사가 약품들을 일선 약국에 공급할 때 여러 약을 묶어 세트로 판매하는 경향이 잦다. 이 중 수요가 많거나 제약사에서 주력으로 미는 품목의 의약품은 자체 개발 후 생산하고, 함께 공급하는 비인기 의약품은 공동생동을 통한 위탁생산으로 제작한다. 정부는 공동생동을 제한할 경우 각 제약사마다 주력으로 생산하는 의약품에 대한 R&D 투자를 늘릴 수 있는 만큼 제약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중소제약사들은 공동생동이 제네릭 품질과 시장질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식약처의 공동생동 제한 움직임이 오히려 소위 ‘대기업 밀어주기’에 나서는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아울러 공동생동 제한 정책이 시행되면 중소형 제약사들은 똑같은 복제약 개발에 드는 비용만 증가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현재의 방식에서 1+3 제도를 도입해 현재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공동생동시험 한 번 당 최대 4곳의 제약사로 제한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대형제약사와 중소제약사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만큼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는 방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