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여명] '서민用'으로 포장된 금융정책들

코픽스 바꿔 주담대 금리 인하

대출액 큰 부동산업자만 득 봐

영세업자 위한 카드수수료개편

'연매출 500억' 가맹점만 이익

서민 위한 정책서 서민은 소외




최근에 금융당국이 새로운 코픽스(COFIX) 도입 일정을 공개했다. 그동안 코픽스를 산출할 때 정기예적금·주택부금·양도성예금증서(CD)·금융채 등을 포함했는데 앞으로는 요구불예금을 추가하겠다는 게 요지다. 요구불예금은 은행에 잠시 머물다 가는 자금이기 때문에 금융채나 CD와 달리 조달 비용이 제로에 가깝다. 요구불예금을 넣으면 평균 금리가 내려가고 결과적으로 코픽스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코픽스 인하→주담대 금리 인하→서민 부담 완화’라는 선순환을 생각하면 환영할 일이다. 서민금융을 강조해온 문재인 대통령도 새 코픽스 도입을 놓고 ‘칭찬’을 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딴판이다. 서민이 혜택을 고스란히 볼 것 같지만 사실은 주택을 여러 채 가지고 있는 부동산 ‘투기꾼’이 가장 큰 수혜를 보게 됐다. 3억원 대출을 끼고 집 한 채를 보유한 서민과 갭 투자로 수십 채를 갖고 있는 다주택자를 비교하면 대출금리 인하로 누가 더 큰 이득을 볼 것인지는 자명하다. 새 코픽스 도입으로 서민의 원리금 부담도 찔끔 줄어들겠지만 대출 규모가 큰 다주택자에게는 서민과 비교할 수 없는 ‘대박 수혜’를 준 결과가 됐다. 정부 한쪽에서는 집값을 잡겠다며 다주택자 과세를 높여서라도 집을 팔도록 유도하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춰 원리금 상환 부담을 덜어 주니 이런 아마추어 엇박자가 따로 없다.

선의로 했다 해도 이율배반의 결과를 낳았다. 관료들이 이런 결과를 모르고 했다면 국가적인 비극이고 알고도 했다면 누군가를 능멸한 것이다. 과도한 은행의 이자이익이 못마땅했다면 코픽스에 손을 대 금리를 떨어뜨리기보다 차라리 이익의 일부로 저신용자나 영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저리대출을 확대하라고 할당하는 게 차라리 더 나은 방법이었다.


은행 건전성 기준인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집값을 잡겠다며 부동산 정책으로 갖다 쓰다 보니 이런 일도 생겨나고 있다. 몇 해 전 그동안 살던 집을 세 놓고 새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간 직장인 A씨. 세입자는 막무가내로 전세금을 빼달라고 하고 들어오는 새 세입자는 구하지 못해 결국 부모와 형제·지인에게 급전을 빌리고 있다. LTV와 DSR 규제로 추가 대출이 막히다 보니 그 많은 은행을 놓아두고 1960~1970년대로 돌아간 듯 사인(私人) 간 금융에 기대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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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가맹점 결제수수료 인하는 정책 결과가 왜곡된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카드수수료 개편방안이 확정되자 광화문 한복판에는 ‘대통령님 감사합니다’라는 팻말이 등장했다. 금융당국은 영세자영업자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카드수수료를 인하했다고 강조했지만 이 정책으로 연간 수억원의 이익을 누린 사람들은 감사 팻말을 들었던 매출 300억~500억원 이하의 가맹점들이다. 대형 슈퍼마켓 사장만 연간 수억원의 이익을 앉아서 챙기는 결과가 된 것이다. 반면 매출 5억원 이하의 영세·중소자영업자는 이번 수수료율 인하 대상에서 제외됐다. 영세자영업자는 그동안 수없이 수수료율을 낮춰주다 보니 실질 부담액이 0원이어서 추가 인하 때는 오히려 특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영세자영업자 부담 완화를 내세워 결과적으로 매출 500억원의 슈퍼마켓 사장들을 구제해준 것이다.

만기환급형(상속형) 즉시연금 구제도 마찬가지다. 즉시연금은 보험료 전액을 일시 납입하고 매월 연금을 받다가 만기 때 보험료 원금을 모두 돌려받는 구조인데 보험료가 평균 2억~3억원에 달해 부자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되는 상품이다. 보험 상품에 수억원씩 넣을 정도면 다른 금융자산은 몇 배 이상 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보험 상품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데 일반 서민이 가입하는 상품은 놓아두고 부자들이 드는 즉시연금 문제만 빨리 처리하려고 하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본 국민성을 놓고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마음)’가 다르다고 비판하지만 우리 금융정책이 명분과 결과가 바꿔치기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겉으로는 서민을 말하지만 수혜는 의외의 계층이 누리는 엇박자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각종 금융정책으로 서민들이 삶이 달라졌다고 체감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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