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 정상회담의 무대가 된 하노이는 베트남의 천년 고도다.
강(河·베트남어로 ‘하’)의 안쪽(內·베트남어로 ‘노이’)에 있다는 뜻을 지닌 이 도시는 베트남 북부에 위치한 수도로 남부 최대도시 호찌민으로부터 1천760㎞가량 떨어져 있다.
기원전 3천년부터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알려진 하노이는 6세기 무렵부터 베트남의 중심 도시가 됐으며 11세기 리 왕조가 수도로 삼았다.
‘탕롱’(승천하는 용) 등으로 불리다가 1831년 하노이로 명명됐다.
1887년 이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중심지가 됐다가 1940년부터 1945년 8월까지 일본의 점령하에 놓이기도 했다.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받는 호찌민 전 주석이 1945년 9월 2일 베트남 민주공화국 독립을 선언한 바딘 화원(현재의 바딘 광장)이 있는 곳이다.
1946년부터 1954년까지 독립을 위한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중심이었고, 1954년부터 베트남전이 끝날 때까지 북베트남의 수도였다가 1976년 통일 베트남의 수도가 됐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집중적인 폭격을 받아 시내 곳곳의 인도에 개인용 방공호가 있었다.
지난해 별세한 존 매케인 전 미국 상원의원이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7년 10월 26일 폭격 임무를 띠고 출격했다가 전투기가 격추당하는 바람에 추락해 포로가 된 곳이기도 하다.
하노이는 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고립에서 벗어나 오늘날의 베트남을 있게 한 ‘도이머이’ 개혁·개방 정책의 심장부다.
도이머이는 바꾼다는 뜻을 지닌 베트남어 ‘도이’와 새롭다는 뜻인 ‘머이’의 합성어로 쇄신을 의미한다.
1986년 베트남 공산당 제6차 대회에서 채택한 슬로건으로 토지의 국가 소유와 공산당 일당 지배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를 도입, 경제발전을 도모하기로 한 것이다.
이후 적극적으로 외국자본을 유치, 빠른 경제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2006년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개최한 바 있다.
하노이는 2008년 근처 하떠이성을 통합하면서 면적이 33만4천여㏊로 커졌고 인구도 1천만명에 육박하는 거대도시다.
우리나라 교민도 6만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등의 대규모 공장이 북쪽에 위치해 현지 파견 임직원과 출장자들도 상당하다.
김일성 북한 주석이 1958년 11월에 이어 1964년 10월에도 방문해 호찌민 당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역사적인 장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번에 베트남을 방문하면 54년여 만에 하노이를 찾는 북한 최고 지도자가 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3월 하노이를 국빈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