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20년만에 처음으로 집값·전셋값이 동반 급락하면서 750조원으로 추정되는 ‘전세부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서울보증보험과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이들 전세대출 보증기관이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돌려준 보증금은 지난해 1,607억원으로, 2017년(398억원)의 4배를 넘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국민은행 조사 기준으로 13주 연속 하락했다. 전셋값은 올해 들어 하락 폭이 커져 지난달 셋째주 0.08%, 넷째주 0.07% 내렸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2월 첫째주(-0.10%) 이후 10년 만에 가장 큰 낙폭이다.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도 이번 달 첫째주에 0.08% 하락하면서 지난해 11월 둘째주 이후 13주 연속 약세를 보였다.
집값 하락기는 2010년대 초반에도 잠시 있었다. 하지만 당시엔 전셋값이 올랐다는 점에서 최근 상황과 다르다. 집값과 전셋값의 동반 추락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이후 처음이다. 이처럼 집값과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면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보증금과 세입자가 은행에서 빌린 전세자금대출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 하는 이른바 ‘깡통 전세’에 대한 우려가 크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김세직 교수와 주택금융연구원 고제헌 연구위원은 지난해 ‘한국의 전세금융과 가계부채 규모’ 논문에서 전세부채 규모가 ‘보수적 가정하에’ 750조원이라고 추정했다. 김 교수와 고 연구위원은 논문에서 “만성적 저금리 정책과 만성적 부동산 경기부양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저금리 장기화와 정부의 규제 완화가 집값·전셋값을 급격히 끌어올렸고, 부동산 투기심리가 보태져 전세부채 ‘폭탄’을 키워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전세부채가 더해진 가계부채가 2,200조원에 이른다며 금리 인상과 집값·전셋값 하락 등 대내외 충격과 정책실패가 겹칠 경우 대규모 금융위기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금융당국은 아직 ‘위기’가 목전에 닥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하면서도 역전세난이 전국에 걸쳐 발생하는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최종구 금융위원장 주재로 열린 ‘가계부채관리점검회의’에서 “전세가 하락에 따른 역전세난 발생으로 전세자금대출 부실화 및 세입자 피해 등 리스크 요인이 상존한다”고 밝혔다.
실제 역전세난이 현실화하면서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보증회사가 세입자에게 대신 보증금을 돌려준 돈이 1년 새 4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10일 SGI서울보증이 국회 정무위원회 장병완 민주평화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실적’ 자료를 종합하면 지난해 두 회사가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준 액수는 1,607억원으로 2017년(398억원)보다 4배 이상으로 커졌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은 전세 계약이 끝났는데,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할 때 보증기관이 대신 전세보증금을 돌려주는 상품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역전세가 광범위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고, 집값이 급락한 일부 지방에선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못 주는 깡통전세도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역전세·깡통전세가 전국적으로 확산, 금융시스템을 위협하는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보고 비상계획을 마련하는 한편 집값·전셋값 하락이 가파른 지역을 중심으로 실태조사에 나설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