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US스틸의 부활




19세기 말 미국은 세계의 공장이었다. 미국은 영국보다 산업혁명이 한 세기가량 늦었지만 중화학 분야에서 2차 산업혁명을 주도했다. 독점적 지위의 기업체를 뜻하는 트러스트(trust)가 이때 탄생했다. 스탠더드오일을 설립해 미국 정유 시장의 90%를 석권한 록펠러를 필두로 철도의 황제 밴더빌트, 철강왕 카네기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이때부터 ‘메이드인 재팬’의 공습이 본격화한 1970년대까지 100년 동안 무역 흑자를 구가했다. 축적된 자본과 최강의 기술력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을 세계 유일의 패권국으로 군림하게 하는 토양을 만들었다.


1901년은 미국 산업사에 신기원을 연 시기다. 금융황제 JP모건은 파트너를 모아 카네기철강 등 여러 철강회사를 한데 묶어 US스틸이라는 초대형 철강회사를 만들었다. 당시 인수대금과 자본금은 각각 5억달러와 14억달러. 현재 가치로 따지면 자그마치 150억달러와 420억달러에 달한다. 한 세기 전의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천문학적 금액이다. 모건이 회사를 처분하고 은퇴하는 카네기에게 “당신은 이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것”이라고 한 말은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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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스틸은 세계 최초의 빌리언(10억)달러 기업으로 출범 1년 만에 미국 시장 점유율을 65%까지 끌어올렸다. 연방 정부가 기업 해체까지 검토할 정도였지만 경쟁자 출현과 미 제조업 경쟁력 약화 등에 따라 쇠락의 길을 피할 수 없었다. 제조업 강국으로 차례로 부상한 일본과 한국·중국 등 해외 기업의 공세에 고로의 불마저 끄기 시작했다. 1991년 다우지수 원년 멤버 지위를 내려놓은 데 이어 2014년 S&P500지수에서도 제외됐다. 한때 30만명이 넘었던 종업원은 3만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멸종 위기의 공룡 같았던 US스틸이 재기를 꿈꾼다는 외신이 잇따르고 있다. 경영난으로 포기했던 설비투자에 나서는가 하면 먼지 쌓인 용광로에 불을 다시 지핀다는 것이다. 지난해 순이익은 전년대비 3배 급증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봄부터 외국산 제품에 관세 폭탄을 투하하자 철강 가격이 오르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하지만 제품 가격이 너무 올라 철강을 원료로 사용하는 자동차와 기계 등 제조업체들이 비명을 지른다고 한다. 보호무역이 초래할 이런 역설에 대한 경고는 진작부터 미 조야에서 나왔지만 트럼프가 들으려고 하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권구찬 논설위원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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