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지난 2015년께 경기지방중소기업청장으로 재임할 때 만난 최고경영자(CEO) A씨의 이야기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업을 승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 CEO였다. 창업주인 부친이 20년 넘게 일궈온 B사는 창업주의 갑작스러운 유고로 휘청거리고 있었다. 부친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 한 칸 남기지 않았고 회사가 유일한 재산이었다.
가업을 이어받은 A대표는 대출을 받고 국세청의 분납허가를 받고서야 겨우 상속세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유일한 유산이었던 B사는 이후 몇 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임원들은 구조조정을 권했다. 그때 A대표는 평소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함께하라”고 말씀하시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끝까지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 회사를 끝까지 지키려는 A대표의 의지를 돕기 위해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월급의 일정 부분을 반납했다. 회사 재정에 크게 도움이 된 것은 아니지만 전 직원이 위기 극복을 위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현재 B사는 신제품 개발과 사업 다각화에 성공해 가업 승계 당시보다 매출이 몇 배 성장해 매년 30명이 넘는 청년을 신규 채용하고 있다. 필자는 A대표와 같이 창업주가 후계자들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기업을 지키려는 정신인데 ‘과연 우리나라는 선친의 가업을 이어받은 후계자들이 기업을 지킬 수 있는 사회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50%)을 보유한 국가다. 물론 정부는 매출액 3,000억원 미만 중소중견기업의 원활한 가업 승계를 위해 가업상속공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공제를 받은 이후 10년간 주된 업종 유지 등 까다로운 요건으로 혜택을 받은 기업이 최근 5년 평균(2013~2017년) 74건에 불과하다. 급변하는 소비자 트렌드에 맞게 혁신하지 않으면 성장은커녕 생존도 어렵다.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언제 망할지 모르는데 상속 전후 20년 동안 지켜야 할 규제가 10여가지나 되고 가업상속공제 후 의무사항을 위반할 경우 가산세까지 납부해야 하니 제도를 이용할 엄두를 내기 힘든 실정이다.
부의 대물림이라는 편견은 장수기업의 가업 승계를 어렵게 하면서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킨다. 일부 재벌 2세들의 일탈 행위로 우리 국민들의 가업 승계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은 이해하지만 필자가 30년간 중소기업 현장에서 만나본 가업 승계 기업인의 대부분은 휴가도 월급도 반납하고 회사를 키우기 위해 부지런히 뛰는 이들이었다. 어쩌면 애초에 회사를 지키려는 이들이 아니라면 회사를 물려받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한국 경제의 저성장 국면과 맞물리면서 복잡한 상속 과정과 승계 후 예상되는 어려운 기업 경영을 피해 선대의 회사를 물려받지 않으려는 2세들이 많아지고 있다. 회사를 매각해 빌딩을 물려받으면 3대까지 편하게 살 수 있는데 ‘굳이 회사를 물려받아 머리 아플 일 있느냐’는 부정적인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원활한 가업 승계를 통한 기업의 성장 발전은 국가와 사회의 부와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 근로자들의 생계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A대표에게 ‘이제 하늘에 계신 선친보다 잘하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지 않냐’고 물었다. A대표가 답했다. “사업을 하면 할수록 돌아가신 아버님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부동산도 아니고 현금도 아닌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무거운 짐을 유산으로 넘겨준 그의 아버지, 그리고 그 짐을 기꺼이 물려받은 아들. 이제는 가업 승계가 부의 대물림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일자리 창출이라는 인식이 확산돼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한 새로운 공식을 써내려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