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경험이 있는 우리나라 여성 5명 중 1명은 인공임신중절(낙태)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계는 대다수 인공임신중절 수술이 음성적으로 시행되고 있어 실제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는 입장이어서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또 다시 커질 전망이다.
14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17년 만 15세 이상 44세 이하 여성 1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7.6%(756명)가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인공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의 19.9%는 수술을 결심할 당시 임신 경험이 있었다고 응답했다. 성 경험이 있는 여성 중에서는 10.3%가 인공임신중절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공임신중절을 받은 여성의 평균 연령은 28.4였고 최저 17세, 최대 43세로 집계됐다. 혼인 형태별로는 미혼이 46.9%로 가장 많았고 법률혼(37.9%), 사실혼·동거(13.0%), 별거·이혼·사별(2.2%)가 뒤를 이었다. 수술 시기는 임신 12주 이하가 95.3%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또 대다수 응답자는 낙태죄를 규정하고 있는 형법과 임신중절 허용 사유를 규정한 모자보건법 개정 필요성이 있다고 답했다. 형법 269조와 270조를 개정해야 한다고 응답한 여성은 75.4%로 나타났다. 형법 269조 등은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고 모자보건법 14조 등은 질환이 있어나 강간 등의 따른 임신일 경우에만 의사가 인공임신중절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모자보건법 제14조 및 시행령 제15조 개정에 대해서는 48.9%가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40.4%는 ‘잘 모름’, 10.7%는 ‘개정 불필요’ 순으로 답했다.
연구원은 또 설문에 참여한 1만명을 국내 가임기 여성 전체 규모로 환산했을 때 연간 인공임신중절 수술 규모를 연간 4만9,764건으로 추정했다. 처음 설문조사를 실시한 2005년에는 34만2,433건이었고 가장 최근 조사인 2010년에는 16만8,738건이었다. 여성의 피임률과 사후피임약 처방이 늘고 가임기 인구가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인공임신중절 수술이 줄어든 원인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통계적 오류가 많은 자료라며 반박하고 있다. 현행법상 인공임신중절이 불법인 탓에 국내외에서 음성적으로 시행되는 규모만 연간 최소 100만건 이상에 달한다는 입장이다. 마지막 설문조사 후 7년 만에 국내 인공임신중절 건수가 70%가량 감소한 것 자체가 통계적 왜곡이라는 설명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관계자는 “이번 조사는 설문 대상을 기존 4,000명에서 1만명으로 늘리고 설문항목도 세분화해 나름 의미 있는 통계적 성과를 거뒀지만 연간 인공임신중절 시술 건수는 현실과 너무 간극이 크다”며 “대부분의 여성이 떳떳하게 밝히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실제 연간 건수는 100만건을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임신중절 수술 규모를 놓고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논란도 또 다시 심화될 전망이다. 이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청원이 답변 기준인 20만명을 넘어섰고 여성단체들도 매주 서울 도심에서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보건복지부가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한 의사의 면허를 1개월 정지하는 내용의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개정안을 도입하자 전국 산부인과 의사들이 인공임신중절 수술 전면 거부를 선언하는 등 갈등을 빚었다.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앞서 헌재는 한 산부인과 의사가 낙태죄가 위헌이라며 청구한 헌법소원을 놓고 공개변론까지 열었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헌재는 지난 2012년 8월 이미 낙태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