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뒤집힌 통상임금 '신의칙'] 아시아나·현대重 등 상고심 줄줄이 대기... '도미노 패소' 오나

대법 "경영상의 어려움 근로자에 전가해선 안돼"

'엄격해진 신의칙'에 최종심 결과 달라지나 촉각

"기준 모호...다른 訴에 일괄적용 어려워" 지적도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배척한다면 기업 경영에 따른 위험을 사실상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14일 인천 시영운수를 상대로 운전기사 22명이 낸 임금청구 소송에서 대법원 재판부가 집중적으로 심리한 쟁점은 ‘추가 법정수당 지급으로 기업 존립이 위태로운지 여부’였다.


즉 추가로 부담해야 할 수당에 비해 이익이 현저히 적다는 기준을 어디까지 봐야 하느냐는 것. 시영운수 사건은 이른바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따라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업 범위와 직결돼 있어 법조계는 물론 재계에서도 그동안 관심이 높은 사건이었다.

대법원도 처음에는 신의칙 적용 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아래 해당 사건을 지난 2015년 10월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결정하면서도 “추가 임금 청구가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신의칙’에 따라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모호한 판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3년4개월간 사건을 심리한 전원합의체는 기존 전원합의체 판결 원칙까지 뒤집을 정도는 아니라고 보고 최근 사건을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로 돌려보냈다.


결국 대법원의 선택은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이라는 추상적 대원칙을 최대한 존중해야 하며 신의칙을 적용하는 예외적 사례는 엄격하게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1·2심에서는 시영운수 측이 추가 부담해야 할 금액을 7억8,000만여원으로 판단해 사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대법원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부분을 공제하면 금액이 4억원가량으로 줄어든다고 추산했다. 2013년 기준 이익잉여금이 3억원을 넘고 이익이 계속 나고 있으니 4억원 정도는 충분히 부담할 수 있는 금액이라는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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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재판부는 “신의칙 적용을 판단할 때는 근로기준법 등의 입법 취지를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추가 법정수당 지급이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근로자들의 추가 임금 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기업을 경영하는 주체는 사용자이고 기업 경영 상황은 여러 경제적 사정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 있다”며 “신의칙 위반 여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단체협약 등 노사 합의 내용이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해 무효인 경우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되는 권리 행사라는 이유로 이를 배척한다면 강행규정으로 정한 입법 취지를 몰각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조계와 재계는 이번 대법원의 판단이 현재 각급 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유사 사건들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회사가 보유하거나 버는 돈이 빠듯하다고 하더라도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라 추가 수당을 요구하는 근로자의 손을 우선해 들어주는 판결이 나올 공산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시영운수와 마찬가지로 2심에서 사측이 승소한 채 대법원 상고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아시아나항공·현대중공업·금호타이어 등의 사건도 결말이 달라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다만 재판부가 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순이익·인건비 등만 따져 신의칙을 판단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이 다른 기업들의 사건 결과에 일괄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기업의 투자유보금을 비롯한 구체적 기준이 나오지 않아 개별 재판 결과를 예단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또 오는 22일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선고를 기다리는 기아자동차 사건처럼 신의칙 외에 통상임금 3대 원칙인 고정성·정기성·일률성 여부가 주요 쟁점인 사건도 상당수다. 결국 시영운수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여전히 통상임금 관련 신의칙 판단은 일선 법원이 건별로 다른 판단을 내놓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한 노동담당 변호사는 “대법원이 ‘시영운수가 이익잉여금으로 추가 수당의 상당 부분을 변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근거가 모호하다”며 “여전히 ‘경영상 어려움’이라는 기준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하게 제시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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