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點)은 시작이요, 끝이다. 점을 우선 찍어야, 선으로 이어가는 것이나 면으로 펼쳐가는 일이 가능하다. 마침표 또한 점이다. 그렇게 점은 조형요소의 기본이자 근간을 이룬다. 푸른 점 하나를 앞세우고 그 뒤를 따르는 점들이, 농담을 달리해 서서히 옅어지며 여백으로 번져간다. 붓으로 무심히 툭 찍은 것 같지만 이는 그렇게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일 뿐, 화폭 뒤덮은 수백 개 점 가운데 무심했던 점은 단 한 개도 없다. 점은 하나하나 제각기 리듬과 강도와 가치와 농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 결과로 멀리서는 마치 꿈틀거리는 생명체처럼도 보인다. 혹자는 “그까짓 점”이라고 할지 모르나, 점을 찍는 일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특히 이우환(83)은 점 하나도 공간과의 관계를 골몰한 후 치밀하게 계산된 색으로 조심스럽게 찍어 작업한다. 점은 일단 찍히면 하나의 좌표와도 같아 그것을 중심으로 새로운 파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벽에 붙은 그림이 파르르 떨린다면 그것은 작품과 관객 사이를 가로지르는 진동이요, 교감이다.
선(線)도 있다. 푸른색 진하게 묻혀 점 찍은 붓이 아래로 내리 달려 혜성의 꼬리처럼 사라져 간다. 속도감 느껴지는 그 선을 보며 일필휘지 내리그은 필력을 칭송하고 싶어진다면 잠시 다시 생각하자. 실제 화가는 속도감 있는 붓질을 사용한 게 아니다. 무심한 점이 하나도 없듯, 숨 가쁘게 질주하는 선도 없었다. 오히려 화가는 숨 멈추고 느릿느릿 선 그 자체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으로 그려나갔다. 내리 찍혀 고정된 점들이 움직임을 이뤘듯, 천천히 그은 선은 빠른 속도감을 보여준다. 그림의 윗부분을 차지한 선의 시작점이 살짝 기울기도 하고 삐뚤빼뚤하고 한 것이 한 시루에서 자라나는 콩나물 대가리 같아 정겨운 말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혹은 멀리 내다보는 초원의 짐승들처럼 영민해 보이기도 한다. 대칭성과 균질함을 가진 선들이 이런 식으로 리듬감을 갖는다. 감동은 희미하게 사라지는 선 끝에 있다. 점과 마찬가지로 선은 지금 눈앞에서 사라지지만 언젠가 다시 반복될 것이라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1970년대에 시작된 이우환의 이 같은 작업은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를 비롯해 ‘바람으로부터’ 등으로 이어져 점과 선, 그리고 그 역동적 움직임의 연작으로 선보였다. 묵직하게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작품이지만, 그저 눈으로만 즐기기에도 충분히 곱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이우환의 1976년작 ‘점으로부터’ 두 점을 보자. 가로·세로 117㎝의 정사각형의 캔버스에 석채로 그린 같은 크기 작품인데, 각각 봐도 좋으나 나란히 놓으면 절묘한 대조로 조화를 이룬다. 붉은 점이 서서히 옅어지면서 양파 속 같은 동심원을 그리는 작품에서는 정중동(靜中動)의 고요함 속 움직임이 느껴진다. 뱅글뱅글 도는 점을 따라 그림 앞에 서 있는 내내 골몰하게 만든다. 이와 달리 푸른 점 작업은 진하게 푹 찍어 점점 옅어지는 점들이 직선을 이루며 사각형을 그린다. 그 자리에 멈춘 점이건만 사라지는 듯 희미해지는 점은 그 자체로 움직임을 만들어 내니, 그림 속에서 각진 바람이 불어 나온다. 마치 점들이 벽에 부딪혀 튕겨 나오는 듯한 충돌의 기운이 느껴지고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면서도 결코 멈출 수 없는 에너지가 감지된다.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된 ‘조응’과 비교적 최근작인 ‘대화’ 연작들은 널따란 화면에 점 한 두 개가 전부다. 홀로 당당한 점은 한가운데가 아닌 약간 아래쪽 혹은 조금 옆으로 어긋나 있다. 이 미심쩍은 점(點) 역시 한 번에 찍은 게 아니다. 점은 여러 번의 붓질로 두툼하게 그려졌으며, 점 안에서도 미묘한 색의 변화를 보인다. 관객은 그림 앞에 가까이 다가가 점을 뚫어지게 보다가 다시 한두 걸음 물러나 그림 전체를 둘러보며 헛기침을 몇 번 터뜨리곤 한다. “무엇을 보라는 것인가” 수군대기도 한다. 여운을 남기는 여백과 그 안에서 점이 이루는 묘한 긴장감, 작품과 관객이 이루는 그 낯선 체험이면 충분하다. 그 앞에서 망설이기만 했어도 괜찮은 일이다.
돌과 철판을 이용한 이우환의 설치작업도 회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지구를 이루는 돌은 그에게 상상을 초월한 ‘시간의 덩어리’이자 우주와 연결된 존재다. 반면 철판은 산업사회의 산물이자 문명을 상징한다. 그러니 돌과 철판은 자연과 산업사회를 징검다리처럼 이어주는 작업이 된다. 이우환은 작품을 보든 돌이나 점을 보든 ‘만남’과 ‘느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늘 강조했다. 작품 자체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시간과 공간, 관계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는 실마리이자 꼬투리를 만들어 주는 게 작품의 역할이라고 했다. 작품을 계기로 잠시 시간이 멈추고 주변 공간이 열리니 작가 스스로 “예술은 시(詩)이며 비평이고 초월적인 것”이라 말했다.
1936년 경남 함안에서 유교적인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난 이우환은 일찍이 조부의 친구였던 한학자에게 한문과 서예를 배웠다고 한다. 어쩌면 점(點)은 그때가 시작이었으리라. 작가는 “내가 점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며 그 당시 떠돌이 환쟁이가 우리 집에 놀러와 그 사람으로부터 서예와 그림을 배웠다. 그리고 우주 만물은 점에서 시작해 점으로 돌아간다든가 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힌 적 있다. 함안 군북초등학교와 경남중학교를 졸업한 후 진학한 서울대 사대부고에서는 산정 서세옥(90)에게서 동양화를 배우기도 했으나 그의 원래 꿈은 문학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대 미술대학에 입학했고 한 학기를 마친 후 1956년 삼촌이 살고 있던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이우환은 일본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사물에서 존재에로’라는 글로 예술평론상을 받으며 화가보다 이론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그 시기는 전 세계적인 불안의 시대였다. 학생운동이 극렬하고 기술문명에 대한 반성, 다양성에 대한 주장이 부상한 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우환의 이론은 ‘모노하(物派)’라는 예술운동의 정신적 기반이 됐다. 예술가는 최소한의 작업만으로 개입해 물체 또는 물질 그 자체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상황을 만들어줄 뿐이라는 것인데, 이는 일본 현대미술의 중요한 움직임이 됐다. 특히 하이데거부터 메를로 퐁티, 미셀 푸코 같은 서구 현대철학자와 노장사상까지 관통하는 이우환의 이론은 1971년 출간된 비평집 ‘만남을 찾아서’를 통해 일본은 물론 한국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 이우환은 한국미술이 국제화(Globalization) 하는 교차지점에서 항상 등장하기에 의미가 남다르다. 일찍이 1971년 파리비엔날레에 참가했다. 1975년 일본 동경화랑의 ‘한국작가 5인-다섯 개의 흰 색’ 전시는 이우환이 결정적 매개자였고, 이는 최초의 ‘단색화’ 기획전으로 기록됐다. 1977년에는 카셀도쿠멘타에 출품했다. 지난 2011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은 백남준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처음이었다. 2014년 파리 베르사유궁전에서의 조각 전시도 한국인 최초였다. 이듬해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 형식으로 현지에서 열린 ‘단색화’ 전에서 이우환은 김환기와 더불어 권영우·정창섭·박서보·정상화·하종현 등의 작가들과 작품을 선보였다. 구겐하임이나 베르사유 전시가 있었기에 외국인들도 이우환을 실마리로 한국의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얻었다고 볼 수 있으니, 명실공히 이우환은 아시아 현대미술이 어떤 것인지를 서구에 소개할 때 앞세워지는 수식어 같은 존재가 됐다. 일본 나오시마에는 ‘이우환 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에는 ‘이우환 공간’이 각각 조성돼 있다.
“나의 그림은 끊임없는 반복의 수련 가운데 무한이 숨 쉬게 되고 기가 충만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림과 공간과 당신이 만나면 신기한 생명의 파장이 여울지는 설렘의 우주가 열릴 것이다.”
그림은 침묵 속에 길을 내 주는 등대다. 침묵은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고도 매혹하는 경이로움이다. 조용한 그의 그림은 우렁찬 침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