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기업 외면하는 이공계] "석박사 따봐야 계약직 쳇바퀴" ...4대 과기원 중도이탈 3년새 28%↑

"50세만 넘으면 퇴출...미래 없어"

서울대 이공계 대학원 동시미달

제조업 혁신 통한 경쟁력 회복이

인재 공동화현상 막을 근본 열쇠




“미래가 보이지 않아요. 대기업으로 간 선배들만 봐도 50세가 넘으면 대부분 직장을 나와요. 후배 입장에서는 의사 같은 전문자격증 따서 안정적으로 살고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죠.”

서울대 공대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는 유모(29)씨의 넋두리는 이공계 인력의 산업현장 기피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열악한 일자리 현실이 이공계 기피현상을 낳고 그나마 우수한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되거나 중도에 진로를 바꾸면서 산업현장의 인력난이 심화하는 악순환이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울산과학기술원(UNIST)·광주과학기술원(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등 4개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을 다니다 중도에 이탈하는 인재들이 최근 꾸준히 늘고 있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4개 대학에서 중도이탈한 학생 수는 지난해 171명으로 지난 2016년(133명) 대비 28.5% 증가했다.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이들 대학은 장학금 등 혜택이 풍부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할 유인이 크지 않지만 문제는 졸업 이후다. 산업현장에서 이공계 일자리가 직업·경제적 안정성을 보장해주지 않자 학생들이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거나 해외 기업을 찾아 떠나가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공계 대학원 진학률도 갈수록 하향세다. 지난해 서울대 공대·자연대 대학원의 전·후기 경쟁률이 각각 0.88대1, 0.95대1에 그쳐 동시 미달 사태가 빚어졌다. 고도화된 산업현장의 기술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대학원 수준의 교육을 마친 이공계 인재가 필수지만 고급인력을 산업현장에 보내는 것 자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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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인재들은 박사 학위를 받아도 취업조차 쉽지 않은 현실이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대 자연대에서 박사후과정을 밟는 신모(32)씨는 “취업 시장이 과거와 180도 다른 세상이 됐다”며 “전공은 물론 영어도 능통자 수준을 요구하는데 그나마 나오는 자리도 계약직이기 일쑤”라고 푸념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2016년 공대·자연대 신규 박사 학위 취득자의 취업률은 각각 72.5%, 64.0%에 불과했다. 박사 학위를 따도 30~40%는 취업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공계 인재들이 산업현장에 남도록 유인하는 통로도 막혀가고 있다. 이공계 인재들이 군에 입대하지 않고 산업현장에서 연구활동을 하며 병역 의무를 대신할 수 있는 전문연구원제도와 산업기능요원제도는 특혜 논란으로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곽승엽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의 ‘전문연구원제도 운영 및 선발의 현황과 성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연제도는 이공계 기피현상 완화 및 인재의 해외 유출을 막는 효과가 있다. 곽 교수가 서울대·고려대·연세대·KAIST·포스텍 대학원생 1,56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0%는 “전문연제도가 박사과정 진학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곽 교수는 “전문연구요원제도가 없을 때는 국내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다른 진로를 택하겠다고 응답한 사람이 86%에 달한다”며 “이 제도가 국내 이공계 대학원 진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기술인재 확보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제조업 혁신을 통한 산업 경쟁력 회복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공대의 A 교수는 “삼성과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이 과감한 투자를 하도록 규제 혁신을 이뤄야 한다”며 “기업과 산업 경쟁력이 높아져 미래 성장성이 보이면 이공계 인재의 산업현장 기피현상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공계 인재의 특성을 고려한 자유로운 기업문화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진영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요즘 학생들은 아마존·구글·네이버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마음껏 연구하고 성과를 내는 기업을 선호한다”며 “조선과 자동차 등 기존 제조업 분야도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매력적인 일자리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종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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