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美·亞에 산업패권 못내준다" 獨·佛의 의기투합

알스톰-지멘스 합병마저 무산되자

메르켈·마크롱 EU경쟁법 개정 추진

EU 집행위 반독점 결정 거부권도

美 관세폭탄 위협·亞 기업 약진에

유럽국가간 규제완화 필요성 고조

英이어 獨도 화웨이 5G 허용 결정

2115A12 독프



유럽을 이끄는 1, 2위 경제국인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연합(EU)의 경쟁법 대수술을 골자로 하는 유럽산업전략에 합의했다. 양국을 대표하는 기업 간 인수합병(M&A)이 EU 경쟁당국에 가로막히는 상황을 타개하고 산업 패권 경쟁에서 유럽이 밀리지 않기 위해 대대적인 규제 개혁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이들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반이민주의 확산으로 유럽을 둘러싼 경제적·정치적 여건이 어느 때보다 불안한 가운데 미국의 관세 폭탄 위협과 아시아 기업들의 약진 등에 맞서 살아남으려면 유럽 국가 간 통합과 규제 완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경제장관과 페터 알트마이어 독일 경제장관은 19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유럽산업전략을 발표하고 다음달 EU 정상회의 때 각국 정상들 간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양국은 이번 합의를 통해 EU 거대기업의 블록버스터급 합병을 막는 EU 경쟁법을 개정하고 유럽이사회(EC)에 EU 집행위원회의 반독점 결정에 대한 거부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두 장관은 “글로벌 시장과 경쟁체제에 대응하기 위해 산업역량을 모아야 할 때”라며 “전략의 취지는 오는 2030년 유럽이 산업 패권을 쥘 수 있도록 유럽 기술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세계 상위 40개 기업 가운데 유럽 기업은 5개에 불과하다”면서 “산업정책이 적절히 반영되도록 경쟁법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이번 계획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그는 이날 베를린에서 열린 한 국제회의에서 “경쟁에 대한 EU의 관점은 글로벌 플레이어를 만들어낼 EU의 능력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며 경쟁법 개정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관련기사



독일과 프랑스의 이번 발표는 프랑스 철도회사 알스톰과 독일 철도회사 지멘스의 합병 무산이 직접적 배경이 됐다. 두 기업은 철도 분야 세계 1위인 중국 중궈중처(CRRC)에 맞서기 위해 철도사업 부문의 합병을 추진했지만 지난 6일 EU 집행위원회가 반독점법 위반 우려를 이유로 양사 간 합병 승인을 거부하면서 좌절됐다. 메르켈 총리 역시 이날 기업명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경쟁에 관한 그의 발언은 이번 합병 무산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최근 EU 집행위원회의 반대로 대형 M&A가 수차례 무산되면서 유럽 산업계에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2017년 독일 최대 항공사인 루프트한자가 에어베를린 인수를 포기했고 독일 증권거래소 ‘도이체뵈르제’와 영국 런던증권거래소 간 합병도 불발됐다. 독일 통신사 도이체텔레콤은 EU 규제가 투자 진행에 방해가 된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제기해왔다. EU 반독점당국이 현재 영국 통신사 보다폰의 리버티글로벌 체코·독일·헝가리·루마니아 사업 인수, 독일 철강사 티센크루프와 인도 타타스틸 간 합병을 심사 중이지만 이마저 불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양국은 이날 한국과 중국 등 배터리 시장을 장악한 아시아에 맞서기 위해 유럽 공동의 배터리 셀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독일이 10억유로, 프랑스가 7억5,000만유로를 각각 투자하고 추가 투자할 회원국들을 모집한다는 구상이다. 이번 결정에는 전기차가 미래 핵심산업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아시아가 자동차 배터리 시장을 주도하도록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르메르 장관은 “유럽이 전기차 기술과 자율주행차에서 글로벌 리더 자리를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영국에 이어 독일까지 화웨이의 5세대(5G) 장비를 허용하기로 하면서 유럽과 미국 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독일의 일부 관련부처가 화웨이의 사업 참여를 허용하는 쪽으로 2주 전에 예비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김창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