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차고스제도




1956년 제2차 중동전쟁이 끝나고 수에즈운하에서 영국군이 철수하면서 미국에는 고민이 하나 생겼다. 냉전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동과 남아시아를 관리하기 위한 전력에 공백이 생긴 것이다. 중동의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하면 미국으로서는 어떻게든 대안을 모색해야 했다. 이때 군사기지 후보로 미국의 눈에 띈 곳이 인도양에 있는 차고스제도다. 1966년 미국은 섬을 관리하고 있던 영국과 50년간 조차(租借)협약을 맺었다. 미국은 1967년부터 1973년에 걸쳐 차고스제도의 가장 큰 섬인 디에고가르시아에 있던 원주민 2,000여명을 모리셔스와 세이셸·영국 등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해군과 공군 기지를 조성했다. 이곳은 인도양 한복판에 있다 보니 웬만한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은 인도양과 홍해 등 전략적 요충지를 관리하기 위해 여기에 미 5함대와 B52 전략폭격기 등을 배치했다. 걸프전과 테러와의 전쟁 때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 폭탄을 퍼부은 B52 폭격기가 발진한 곳이 바로 이 기지다.


60여개의 섬으로 이뤄진 차고스제도는 원래 무인도였지만 16세기 포르투갈에 의해 발견된 후 차츰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됐다. 18세기 말에는 프랑스가 영유권을 선언하고 아프리카와 인도인들을 노예로 데려와 코코넛 농장을 조성했다. 1814년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이 일대를 자국령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후 차고스제도는 영국 식민지인 모리셔스 관할하에 놓인다. 그런데 영국은 1968년 모리셔스를 독립시키면서도 차고스제도는 그대로 영국령으로 남겨뒀다. 이후 미군 기지가 조성되면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차고스제도 주민들은 1980년대부터 ‘차고스 난민회’를 결성해 영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유엔을 상대로도 권리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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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산하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차고스제도를 모리셔스에 반환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ICJ는 “이른 시일 내에 차고스제도에 대한 통치를 끝내라”고 영국에 권고했다. 하지만 영국은 “이것은 (구속력 없는) 권고일 뿐 판결이 아니다”라며 반환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힘 있는 나라가 국제기구의 결정을 무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에는 중국도 남중국해 영유권을 부인한 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을 거부한 바 있다. 결국 국제정치 무대에서는 힘이 곧 정의라는 말이 새삼 실감이 난다. /오철수 논설실장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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