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동양에서 날아온 앳된 여성 바이올리니스트가 런던 로열페스티벌홀 무대에 섰다. 갓 스물을 넘긴 바이올리니스트는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떨리는 마음을 감추고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LSO)와 함께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연주했다. 그의 열정적이면서도 섬세한 연주에 청중들은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이 무대를 통해 세계 클래식계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연주자의 이름은 정경화였다. 이후 꽃길만 있는 성공 가도 위에 올라탄 정경화는 5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현재까지 세계 제일의 ‘바이올린 여제’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정경화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세계 무대에 알린 지휘자 겸 작곡가 프레빈이 향년 89세를 일기로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별세했다. 세계적인 명문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프레빈은 4차례의 오스카상, 10차례의 그래미상을 받을 정도로 장르를 넘나들며 명곡을 남겼다.
프레빈은 1929년 독일 베를린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유명 변호사이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는 아들의 특출난 음악적 감각을 발견하고 6세 때 베를린 음악원에 입학시켰다.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탄압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 이후에도 프레빈은 음악 공부를 중단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서 작곡과 지휘를 배운 그는 졸업 후 유니버설 스튜디오, MGM 등 당시 할리우드 유명 제작사들과 함께 영화음악 작업을 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영화 ‘지지’(1958년), ‘포기와 베스’(1959년), ‘당신에게 오늘 밤을’(1963년)과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1964년)로 네 번의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클래식 음악계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자 할리우드를 떠난 그는 1967년 휴스턴 심포니의 음악 감독에 취임했고 이후 LSO, 휴스턴 심포니, LA필하모닉, 런던 로열 필하모닉 등 세계적인 악단의 지휘자로 활동했다. 특히 보수적인 영국 음악계의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약관의 한국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를 무대에 세운 프레빈은 LSO에서 1968년부터 1979년까지 11년간 상임 지휘자로 지내면서 수십 장의 음반을 제작하기도 했다. 피아노와 대중음악, 지휘와 작곡을 넘나드는 다재다능 때문에 그는 종종 뉴욕 필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과 비교되기도 한다.
평생 다섯 차례나 결혼한 프레빈은 음악적 역량만큼이나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 호사가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세 번째 아내였던 미국 여배우 미아 패로와 3명의 자녀를 뒀고 또 3명의 자녀를 입양했는데 한국에서 입양한 딸 순이가 이후 양어머니 패로의 동거남이었던 영화감독 우디 앨런과 결혼해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프레빈의 별세 소식을 들은 정경화는 “의심할 바 없는 천재였고, 온화한 인품으로 주변을 따뜻이 챙겼던 앙드레, 고이 잠들기를”이라고 추모했다. 전 부인 패로는 트위터에 “아침에 다시 만나요, 사랑하는 친구. 장엄한 교향곡들 가운데 잠들기를”이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