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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 "건축물은 '공공의 산물'...건축사에 책임·권한 함께 줘야"

소비재와 달라 건축사 공적 역할 중요한데 권한은 없고 규제만 쏠려

정당한 대가 주고 누더기 건축법 개선해야 안전·양질의 설계도 가능

공공사업에 민간참여 확대...건축사, 협회가입 의무화로 신뢰 높일 것




대담 : 이종배 건설부동산부장 ljb@sedaily.com

“공공 건축물의 주인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입니다. 어떻게 보면 후대에 물려줄 유산이기도 하지요. 건축물은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일종의 소비재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런 건축물을 짓는 건축사의 공적 책임과 사회적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건축사들이 제대로 공적인 역할을 하려면 개인의 직능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가 해결돼야 합니다. 건축사가 제도적으로 경제논리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때 공공을 위한 건축이 만들어집니다.”


석정훈(사진)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은 최근 서울 서초동 협회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종청사 설계공모전’ 파문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정부 세종 신청사 당선작 투표 과정에서 행정안전부가 내정한 심사라며 건축사인 심사위원장이 사표를 던진 바 있다. 그는 “건축사에 대한 사회적인 신뢰가 이 정도인가 반성하면서도 건축사가 누구인지 알리기 위해 대중과 적극적으로 교감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취임 1년 동안 석 회장은 건축사의 공적 역할 강화, 건축사 알리기 등 여러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무엇보다 그는 건축물은 정부나 개인의 것을 넘어 ‘공공의 산물’이라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석 회장은 우선 달라진 건축 위상에 맞춰 건축사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제했다. 그는 “우리 국가와 국민들도 건축과 도시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고 있다”면서 “개발시대의 높고 크고 넓기만 하면 되는 성과 위주의 건축에서 이제는 소외된 부분을 챙기면서 함께 가야 하는 공공성이 커졌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난해 유독 많이 발생한 건축물 관련 사고를 바라보면서 건축가의 책임이 두드려졌다.



이에 대해 석 회장은 “모든 건축의 책임은 건축사가 지는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건축물의 사고에 대해서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며 “없어질 때까지 수십년, 수백년간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건축물을 만드는 건축사 스스로도 공공성에 앞서 자기 예술성이나 창작 욕구를 구현하느라 방심하지 않았나 고민해야 했다”고 반성했다.

동시에 그가 지적한 것은 건축사에게 ‘책임은 있되 책임과 권한이 함께 주어지 않는 현실’이다. 건축행위에 참여하는 건축주·시공자·건축사 중 실제 행위자인 시공자·건축주에 대한 처벌은 약하고 후속규제는 건축사에게 쏠리는 게 현장의 모습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포항 지진 대책으로 정부가 내놓은 필로티 건축물 관련 건축법 개정안이다.

지난 2017년 11월 발생한 포항 지진으로 붕괴 위험에 처한 건물 중 상당수가 필로티 구조로 지어진 건축물이었다. 이에 정부는 필로티 건축물 구조 강화를 위해 앞으로 지어질 건물에는 건축구조기술사가 설계를 검토하고 공사 중 감리에도 일부 참여하도록 법을 바꿨다. 하지만 석 회장은 이 또한 누더기 법으로 건축사에게 책임만 더하고 건축사가 제안한 근본 개선책은 외면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정부가 말한 대로 필로티 구조가 안전하지 않다면 과연 이를 대신할 바람직한 건축물의 형태는 무엇인지에 대한 대안이나 이 건물을 지을 수밖에 없는 제도는 건드리지 않았다”면서 “근본 대안 없이 구조 부문 고급기술자가 점검하도록 한 것인데 불필요한 비용만 지불되고 공사가 지연되는 등 업무 불균형이 심해져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문제가 벌써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석 회장은 “결국 건축사가 책임지고 행하는 일인데도 정부는 다 틀을 만들어놓고 관련 전문가인 협회에는 추가 의견만 받았다”며 “권한은 주지 않고 책임만 지우니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안타깝지만 억울한 측면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건축물 안전 문제가 미봉책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설계업에 정당한 대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석 회장은 2016년 시행된 ‘소규모 건축물 설계·감리 분리’를 통해 우리 건축 시장의 특수성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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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원칙적으로는 건물은 설계자가 가장 잘 아니 감리도 함께해야 하지만 우리 사회는 개발시대를 거쳐오면서 사업주·건축주의 영향력이 너무 커졌다”며 “건축 전문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 건축주를 지적할 만한 시스템이 안 돼 있기 때문에 선진 건축 시스템과 다르게 어쩔 수 없이 설계와 감리가 분리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설계 대가에 대해서는 “건축 시장의 경제구조로는 양질의 설계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며 “우리 건축사가 제대로 된 공적 역할을 하려면 정당한 대가와 설계·감리 업무에 대한 합당한 평가를 받는 것이 전제”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풍토가 조성되기 위해서는 결국 국민들이 건축사를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좋은 건축사가 만든 좋은 건축을 국민들이 느끼고 체감해야 한다는 것도 그의 생각이다. 이의 일환으로 그는 취임부터 ‘건축 알리기’ 프로젝트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공공건축가제도’다. 이 제도는 국내에서 서울시가 2012년 처음 시행했고 프랑스·네덜란드·일본 등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방식이다. 공공사업에 민간 건축가를 참여시켜 한 단계 더 좋은 건축으로 도시를 만들어보자는 제도다. 공공건축가제도는 한 도시의 건축 정책을 총괄하는 총괄건축가, 도시재생에 참여하는 마을건축가나 골목건축가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석 회장은 “오래전부터 자체적으로 공공건축가를 운영한 경북 영주시는 이제 건축 기행지가 됐다. 이는 좋은 건축물이 우리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게 실질적으로 증명되는 계기가 됐다”면서 “도시재생 사업에서도 건축의 공공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건축사가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협회가 지원하고 독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서 영입된 총괄건축가에 대해서는 지역의 특수성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덧붙였다. 그는 “현실적으로 총괄건축가제도가 건축 이상주의가 돼서는 안 되며 반드시 그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건축사와 함께하며 조언자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 같은 건축계의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석 회장은 ‘건축사협회 의무가입’을 꼽았다. 올바른 건축문화와 불합리한 제도 개선에 협회가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건축사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협회는 의사협회나 변호사협회처럼 자체적인 징계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건축사의 이미지를 해치는 문제행위에 대해서도 회원사들은 그저 협회를 탈퇴하면 그만”이라면서 “만연한 면허대여 문제 등에 대해 협회가 징계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관련 정부부처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협회 의무가입은 한국건축가협회·새건축사협의회 등으로 나뉘어 있는 건축 관련 단체 통합과 연관된다. 석 회장은 이에 대해서도 “(통합을 위해) 단체들과 주기적으로 교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임기 동안 건축사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겠다며 마무리했다. 그는 “건축사 스스로 반성하는 것뿐 아니라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스스로 법과 제도의 개선에 참여해 일만 하는 집단이 아닌 사회에 봉사하는 건축사로 탈바꿈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리=이재명기자 nowlight@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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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서울 △1978년 연세대 건축공학과 △1985년~ ㈜태건축설계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2015~2017년 대한건축사협회 부회장 △2015~2017년 서울특별시건축사회 회장 △2015년~ 국제건축연맹(UIA) 2017서울세계건축대회 조직위원장 △2018년~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 이사 △2018년~ 국토교통부 중앙건축위원회 위원 △2018년~ 대한건축사협회 회장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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