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최저임금 기준에 지불능력 포함돼야 한다.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

지불능력은 빼고 최저임금 결정

못주면 염전노예주보다 센 처벌

법 이름 빌린 국가횡포에 해당




사람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해 현저하게 부당한 이익을 취득했을 때 형법은 부당이득죄라고 해 처벌한다. 염전노예를 부리는 경우를 생각하면 쉽다. 이때 처벌 수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그런데 최저임금보다 적게 주면 받는 형벌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부당이득죄와 달리 징역과 벌금이 병과될 수도 있으니 염전노예주가 받는 처벌보다 무겁고 협박죄·주거침입죄·비밀침해죄·경계침범죄·유기죄(영아유기 포함)보다도 엄하다. 최저임금법을 시행하고 있는 독일은 형벌 아닌 과태료만, 일본은 최고 50만엔(약 500만원)의 벌금형만을 두고 있을 뿐이다. 미국은 체납액의 2배까지 징수가 원칙이고 ‘의도적 위반’의 경우에만 벌금 또는 6개월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최저임금 결정 기준 개편에서 지불능력을 뺀 것은 이 제도가 갖는 법적 의미와 기능에 비춰볼 때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유사 사례가 없을 정도로 고용주에게 가혹하게 최저임금을 강제하고 있다. 범죄 구성 요건을 해마다 국회도 아닌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위반 논란의 여지도 있다. 다른 사람을 고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해마다 바뀌는 기준에 따라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는 근로기준법과 달리 최저임금법은 한 명이라도 고용하면 예외 없이 적용된다. 하루아침에 염전노예주보다 더 엄벌에 처해질 수도 있는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한두 명의 종업원을 둔 고용주이다. 말이 고용주이지 이들은 어찌 보면 무늬만 사장이고 실제로는 노동시장에서조차 밀려났거나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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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최저임금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독일은 지난 2015년에 와서야 최저임금법을 시행하면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제안한 최저임금이 연방 상원의 동의 없이도 연방 정부에 의해 공포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이 갖는 무게가 입법과 같다는 것을 말해준다. 대신 형사 처벌은 예정하지도 않았다. 재산권뿐 아니라 신체의 자유까지 바로 침해할 수 있는 우리의 경우에는 더욱 최저임금 기준 설정과 운영의 정당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법적 강제력을 수단으로 국가가 사인 간의 계약에서 어느 한 편을 드는 것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법 도입 배경에는 개별적인 계약 자유의 원칙에만 맡겨뒀을 때 소위 ‘갑’의 지위에 있는 고용주와 ‘을’인 노동자 사이에 대등한 교섭과 공정한 합의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정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영세자영업자·소상공인들이 국가가 나서서 팔을 비틀어야만 할 힘센 존재인지, 그래서 최저임금을 주지 못하면 염전노예주보다 더한 법적 비난을 받아야 하는 비윤리적 존재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들은 이리저리 치이는 사실상 ‘을’이나 다름없다. 지불능력을 감안하지 않고 최저임금을 결정한 뒤 그만큼 주지 못하면 징역살이나 벌금, 아니면 둘 다 각오하라는 것은 직무유기이자 법의 이름을 빌린 국가의 횡포이다.

일본의 경우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통상적 사업의 임금 지불능력 세 가지 요소를 감안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 법에도 최저임금 결정 요인으로 노동생산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나아가 사업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용주에 대한 유례없이 무자비한 처벌 규정을 생각하면 이 조항은 재량이 아닌 정부의 의무로 해석해야 옳다. ‘을’을 위한다면서 사실상의 ‘을’이 범죄자가 되도록 방치한다는 것은 위선이다.

우리 헌법은 최저임금제 시행의 근거 규정에서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고용 증진과 적정 임금의 보장에 노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의 최저임금 정책이 고용 증진이라는 헌법적 목표 달성에 기여하는지에 대한 평가는 유보하고라도 고용주의 지불능력을 배제한 최저임금 결정 기준이 헌법상의 사회적·경제적 방법에 해당한다고 하기는 어렵다. 국회에서 이 부분만이라도 제대로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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