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과정인가, 결과인가. 선과 악 중 누가 승리하는가. 1회성 게임에서 과정과 결과는 분리된다. 당연히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 반복성 게임에서는 과정과 결과가 통합된다. 당연히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비롯된 게임이론은 1회성 게임은 배반자가, 반복성 게임은 협력자가 승리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뜨내기손님을 받는 식당은 겉만 번지르르하면 되나, 단골손님을 모시는 식당은 실제가 알차야 한다.
세상은 입력과 출력이 있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이 변화하지 않으면 먼저 권력을 차지해 힘으로 제압하면 승자가 되는 제로섬 게임이 된다. 나의 이익은 남의 손해가 되는 이기심의 추락이다. 이 게임의 핵심전략은 약탈과 쟁취에 있고 진입장벽을 구축해 지대(地代)를 추구하는 데 있다. 보호와 통제의 투쟁이다.
과정인 시스템이 변화하면 혁신자가 승자가 되는 반복성 게임이 된다. 빌헬름 딜타이의 ‘강과 강물’처럼 과정이 결과를 만들지만 결과가 과정을 변화시킨다. 바람직한 결과는 증폭하고 그렇지 않은 결과는 개선하면 플러스섬 게임이 될 수 있다. 이 게임의 핵심전략은 혁신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선순환 분배하는 이기심의 승화에 있다. 창조적 파괴의 혁신이다.
이제 지난 250년 인류의 거대한 실험인 산업혁명에서 국가 부의 원천은 무엇인가 확인해보자. 산업혁명을 통해 개인소득은 500배 이상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90%가 넘던 농업이 2%로 줄어든 것이 아니라 농업 외 산업이 농업보다 50배 이상 커지고 농업도 10배 성장한 것이다. 이러한 국부의 원천은 노동인가, 자본인가라는 오랜 논쟁이 있었다. 노동의 양이 국부를 증가시키지는 못한다. 자본의 대중화로 자본의 비중은 날로 축소되고 있다. 500배 소득증가의 94%는 기업가정신이 발현된 혁신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 최근 연구의 결론이다.
혁신은 창조적 파괴라고 조지프 슘페터가 설파했다. 저부가가치의 일자리를 파괴하고 고부가가치의 일자리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국부가 늘어난 것이다. 한국이 지난 60년간 600배의 소득증가를 이루는 과정에서도 동일한 일자리의 파괴와 창출이 이어졌다. 기존 일자리와 기업과 산업이 파괴되고 새로운 일자리와 기업과 산업이 창출되는 파괴적 혁신을 거스르는 국가는 실패했다.
부의 원천이 노동이라는 제로섬 사회에서 이기심은 추락한다. 제로섬 사회에서의 부는 약탈의 증거이므로 부가 존중될 수 없다. 노동자는 단합해 왜곡된 부를 다시 쟁취해와야 한다. 기업과 노동자는 상호배타적인 관계가 된다. 이를 조정하기 위한 통제와 보호가 국가의 역할이 된다.
부의 원천이 혁신이라는 플러스섬 사회에서 이기심은 승화한다. 플러스섬 사회에서의 부는 혁신의 증거이므로 존중돼야 한다. 기업과 노동자가 혁신으로 창출한 부를 선순환 분배하면 지속 가능해진다. 기업과 노동자는 상호협력적 관계가 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자율과 공정경쟁이 국가의 역할이 된다. 정체된 국가는 이기심의 추락인 투쟁이, 발전하는 국가는 이기심의 승화인 혁신이 국민의 가치관이었다.
지금까지 한국은 효율주도 추격 전략의 전 세계 최우등생이었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했고, 자율보다는 통제가 중심이었다. 이제 효율에서 혁신으로 가는 탈 추격 전략에서 새로운 도전은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국가 패러다임 구축이다.
효율은 공장의 패러다임이다. 결과인 제품의 실패는 허용되지 않는다. 동일한 제품 생산을 위해 통제는 필수다. 혁신은 연구소의 패러다임이다. 과정인 연구는 실패를 거쳐 성공한다. 다양한 연구를 위해 자율은 필수다.
효율과 혁신을 결합하는 패러독스는 강과 강물 같은 복잡계 상호작용 논리로 풀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