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충청남도 천안 라마다앙코르호텔 화재에서 숨진 한 명은 불을 진압하려다 변을 당했다. 자신이 근무하던 호텔에서 난 사고를 책임지려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목숨을 잃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 사고는 동일한 화재 현장에서 대피의 여부가 생사를 가른다는 교훈을 주기도 했다. 29년간 불과 싸워온 재난전문가로 손꼽히는 정문호 소방청장은 “사고가 나면 시민은 전문가가 아니다. 대피가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정 청장은 임기 동안 ‘시민 대피교육’을 집중 홍보할 생각이다. 그동안 소방교육이 소화기·소화전 사용법 등 재난대응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대응은 전문가인 소방관에게 맡기고 시민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우선 대피해야 한다는 것이 정 청장의 생각이다. 정 청장은 “최근에 발생했던 대형화재만 보더라도 신속한 대피가 생명을 구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며 “동일한 화재현장에서도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 생사의 갈림길”이라고 조언했다.
정 청장은 “여러 재난을 겪어봤지만 가장 핵심적인 사안은 인명피해를 줄이는 것”이라며 “인명피해의 큰 요인 중 하나는 대피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정 청장은 “요즘은 화재 열기 때문이 아니라 질식 때문에 사망한다”며 “플라스틱 제품이 많아 유독가스를 마시면 곧바로 쓰러진다”고 설명했다. 정 청장은 “빨리 대피하는 게 중요한데 스스로의 체면을 우선시하거나 자신이 재난에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이 많다”며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소방청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1차적으로는 ‘자신의 생명은 자신이 지킨다’는 시민 스스로의 생각이 우선이라고 정 청장은 지적했다.
건물주의 안전 불감증 문제를 해소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정 청장은 꼬집었다. 그는 “건물주들도 소방시설의 관리 상태에 대해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인식해야 한다”며 “이런 인식이 없으니 비상구를 폐쇄하고 그 앞에 물건을 쌓아놓는다. 소방청이 아무리 점검해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 청장은 “법에 없으면 절대 소방시설을 설치하지 않는데 법은 최소 기준에 불과하다”며 “건축주들의 책임도 강화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개인과 건물주·소방조직의 ‘3박자’가 맞물린 대응 시스템의 조직화를 정 청장은 목표로 하고 있다. 정 청장은 “제천·밀양 사태 이후 이전에는 상황 도착 뒤 대응단계를 올렸지만 이제는 아예 대응단계를 미리 걸고 상황에 따라 해제하는 ‘초기부터 과잉대응’ 방식을 도입했다”며 “간부 소방관의 지휘역량 강화를 위해 지휘관 자격화 등도 추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