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민주주의 떠받치는 요체 '다양성'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다양성이 절충·관용문화 만들어

印 '단일 정당' 나오기 힘들듯이

다양한 美대중 트럼프 폭주 견제




조만간 연방 법무장관에게 제출될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보고서는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시험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보고서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노골적인 당파적 방식으로 처리해야 할까, 아니면 미국의 헌정 시스템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까.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 우리는 지금 자유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폴란드·헝가리·터키와 필리핀 등 다양한 국가들의 경우 국민이 선택한 정부와 정치지도자들은 독립기관의 권위를 흔들고 중요한 규범을 어겨가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축적하고 있다.

이들은 공공의 권리를 보호하는 헌법기관의 힘이 약화돼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무너진 국가다. 서슬 퍼런 권력 앞에서 정당들은 비열하게 눈치를 보고 법원은 순종적이며 언론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미국은 혼재된 상황이다. 정치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폭주에 대한 견제는 오직 당파적 노선을 따라 이뤄질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치고 있다는 확신에도 공화당 지도부는 대통령에게 백기 투항한 상태다.

평생 행정부의 권력 독점을 비판해온 상원의원들이 트럼프의 그릇된 국가 비상사태 선포를 군말 없이 승인해줬다. 예산 지출이라는 의회의 핵심 권한을 백악관이 멋대로 휘두를 수 있도록 순순히 협조한 셈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미국의 일부 기관들은 트럼프에게 저항했다. 사법부는 독립성을 유지했고 연방수사국(FBI)을 비롯한 법무부 산하의 다양한 수사기관들은 국가와 헌법을 백악관의 현 입주자보다 상위에 두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대통령은 날마다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을 훼손하는 공격과 위협을 일삼았으나 언론은 대체로 최고 권력자의 비정상적인 외압을 이겨냈다.

그러나 트럼프에게 가장 강력한 견제력을 행사한 집단은 일반 대중이었다. 이들은 중간선거에 앞서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와 시위에서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표출했고 투표권 행사로 대통령의 행동에 일부나마 제동을 걸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바로 이 같은 대중의 각성과 행동이 튼실한 민주주의의 희망이 돼야 한다. 종종 회자되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처럼 “국민 모두를 영구히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다.”

민중의 힘에 대한 내 믿음은 7,000마일 떨어진 인도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더욱 강화됐다. 거기서도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인 나렌드라 모디가 종종 독재주의적인 방식까지 동원해가며 권력을 쌓아올렸다.

독재자에 버금가는 권력으로 무장한 모디 총리가 관료집단과 사법부에 행사한 압력은 종종 효력을 발휘했다.

언론에 대한 협박도 효과가 있었다. 한때 기세등등하던 자유언론은 집권당의 눈치를 살피는 시녀로 전락했다.


정치권력의 힘에 굴복한 사업가들 역시 엄청난 자금 지원으로 모디의 정당인 BIP에 힘을 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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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BIP는 최근 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언론의 일방적인 보도와 자금 및 지방 관리들의 편파적 개입이라는 결정적인 이점에도 BIP는 몇 개월 전 일부 핵심 주에서 패배를 맛봤다.

왜 그랬을까. 한마디로 다양성 때문이다.

사반세기에 걸쳐 인도의 정치를 관찰한 루치르 샤르마는 그의 새로운 저서에서 인도 정치의 지배적인 현실은 다양성이라고 지적했다.

인도는 12개의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커뮤니티와 인종 그룹, 카스트, 부족 및 계급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수의 정체성은 일상생활에서 정치적 선호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에 대한 국민적 관점을 형성한다.

샤르마의 책에 등장하는 대형 소비재 상품 제조 업체의 대표에 따르면 그의 회사는 현기증 나는 다양성 때문에 인도를 14개의 하부 지역으로 나눠 관리한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중동 지역의 20개국은 단 4개의 그룹으로 분리해 관리한다.

바로 이 다양성이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의 최대 강점임을 입증했다. 다양한 커뮤니티 모두의 지지를 받는 단일 정당이 결코 나올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40년 동안 인도의 선거 때마다 나오는 최고의 전망은 현직의 퇴출이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모디는 막강한 자금력과 의회 내 거대 의석, 알랑대는 언론, 표 매수에 이용 가능한 방대한 대중주의적 지출 프로그램 등 숱한 이점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의 여론조사는 그의 연정이 이번 총선에서 다수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모디는 최근 파키스탄과의 군사 충돌에 따른 인도의 상황 변화를 민족주의 노선을 밀어붙이는 데 활용하려고 들었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는 모든 야당을 반민족·친파키스탄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이런 전략은 어느 정도 통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끝난 후 모디는 의석이 대폭 줄어든 다수당을 이끌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의 사망 이유(How Democracies Die)’라는 책을 함께 펴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다양성이 민주주의의 성공에 필수적인 절충과 관용의 문화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공화당이 지나치게 경직되고 편협할 뿐 아니라 절충과 관용이라는 규범마저 외면하는 부분적인 이유는 민족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순수혈통의 단일 정당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서구국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다양해질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인구 통계적 현실이다. 인도의 예는 다양성을 수용하고 기린다면 실제로 민주주의를 구하고 강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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