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이 요즘 푹 빠져 있는 것은 ‘붓글(서예)’이다. 정태춘은 이번 인터뷰에 앞서 정태춘·박은옥 40주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전시할 예정인 작품을 포함해 지난해 여름 집중적으로 작업한 붓글 작품들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완벽주의 성향 때문인지 작품 하나를 보여주다 ‘이건 아니다’라며 바로 구겨버리기도 했다. ‘다시, 건너간다’는 제목의 전시는 오는 4월11~29일 서울 세종미술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의 붓글 작품은 다양하다. ‘자본이 뇌를 점령하고 신체를 지배한다’ 같은 문장이나 ‘반산(反産·반산업주의)’이라는 낙관이 찍힌 작품부터 그의 노래 가사와 개인적으로 느낀 소회를 담은 글, 손녀의 그림 위에 얹은 한시 등 다채롭게 펼쳐진다.
붓글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 작품활동 중단을 선언한 후 시간이 많았던 10여년 전부터다. 그는 “박은옥씨가 천자문을 다시 공부하고 싶다고 교재를 준비했는데 보지 않아 내가 하게 됐다”며 “한자 공부를 계기로 한시 쓰기에 푹 빠졌다”고 밝혔다. 그는 “‘시마(詩魔·시의 마귀)에 사로잡혀 있다’는 표현처럼 일상의 모든 순간을 한시로 어떻게 표현할지에 빠져 있던 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운을 맞춰야 하는 등 한시의 엄격한 규칙이 답답하게 느껴지면서 한글로도 풀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고 지금의 붓글 방식에 이르게 됐다. 그는 “난 서예를 공부한 사람이 아니어서 ‘막글’”이라며 “글씨의 조형성도 중요하겠지만 내게는 내용이 중요해 임의로 ‘붓글’이라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붓글의 매력은 종이 위에 조형적인 고민을 함께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이다. 글 위에 또 다른 글을 덧쓰거나 그림에 글을 얹기도 한다. 그는 또 “처음 종이를 펴고 붓을 잡고 낙관을 찍을 때까지 긴장감이 필요하다”며 “잘못되면 버리고 다시 하는 과정 자체가 흥미롭다”고 설명했다.
붓글을 쓰는 것과 직접 작사·작곡해 노래하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정태춘은 “나는 어떻게 보면 수다스러운 사람”이라며 “텍스트가 만들어내는 느낌과 울림에 재미를 느끼다 보니 계속해서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래와 붓글의 차이를 묻자 “노래는 노래대로 형식미가 있고 음악과 가사가 함께 어우러져 완성된 작품은 성취감이 크지만 앨범을 내는 작업은 시간과 돈이 많이 소요되는 작업”이라며 “상품으로서 시장성이 없으면 재생산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