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글로벌What] '맥스'가 무너뜨린 왕좌…항공기 시장 재편 시동 거나

■창사 이래 최대 위기 맞은 보잉

전세계 소형 기종 인기몰이에

보잉 737맥스 유례 없는 히트

작년 매출 1,000억弗 첫 돌파

차세대 주력기종으로 삼았지만

에티오피아 추락으로 '부메랑'

라이벌 에어버스는 '반사이익'

印尼 등 구매계약 잇단 논의

中 막강 지원 속 코맥도 부상

"수십년 시장 복점 구조 깨져

코맥, 20년내 빅3 등극할 것"




‘1등의 저주’. 지난해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인텔의 반도체 칩에서 치명적인 보안결함이 드러났을 당시 많은 외신 기사들은 이 같은 제목을 뽑았다. 초심을 잃은 업계 선두기업이 자만심에 빠져 몰락을 자초하는 전철을 인텔이 밟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앞서 애플이 구형 아이폰의 성능을 떨어뜨리는 프로그램을 배포했을 때도 비슷한 우려가 쏟아졌다.

최근 글로벌 항공 업계에 그 저주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항공기 제조사 보잉이 야심 차게 내놓은 737맥스 기종이 잇단 추락 사고로 전 세계 하늘길에서 운항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것이다.


이번 사고로 보잉의 시가총액은 지난 10일 에티오피아 추락 사고 이후 사흘 만에 266억달러(30조원)가량 날아갔다. 유럽·아시아·중동의 각국 항공사가 연이어 운항 중단 혹은 금지 조치를 내린 데 이어 ‘보잉 세일즈맨’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마저 미국 내 보잉 737맥스 운항 중단 명령을 내리면서 사태는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궁지에 몰린 보잉사가 결국 14일(현지시간) 해당 기종의 인도를 중단하면서 당분간 전 세계 하늘에서 보잉 737맥스를 보기는 어렵게 됐고 회사 이미지는 치명타를 입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보잉이 기존 항공기 운항 중단에 따른 대체항공기 대여비용으로 1·4분기에만 5억달러가량의 손해가 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보잉 737맥스의 비극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회사가 있다. 보잉과 함께 세계 항공기 시장을 복점(複占)하고 있는 에어버스다. 최대 라이벌인 보잉의 위기로 반사이익을 보게 된 에어버스의 주가는 보잉 사고 직전 대비 5% 이상 뛰었다.

1916년에 설립된 미 항공기 제조사 보잉은 유럽의 에어버스와 함께 세계 항공 업계의 양대 축으로 군림해왔다. 설립 당시만 해도 수상비행기를 만드는 작은 회사였던 보잉은 1~2차 세계대전 기간에 미국 육·해군의 대량 주문을 따내며 고속 성장을 이어갔다. 전후 B707로 제트여객기 시대를 연 보잉은 1967년 140~180명이 탑승할 수 있는 중형 단거리용 항공기 737로 항공기 역사에 새 장을 썼다.


이 같은 보잉의 성장세 속에 등장한 것이 유럽의 에어버스다. 보잉은 물론 1967년 합병한 맥도널더글러스까지 세계 항공기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는 미국 제조사를 견제하기 위해 유럽 각국과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통합해 탄생시킨 회사다. 1974년에 첫선을 보인 250석 규모의 에어버스 300은 초기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1980년대 개량형 A310·A320을 내놓으며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연료 효율이 높고 승객 수가 많지만 관리비용은 낮은데다 파격적인 할인율을 적용한 저렴한 가격 등을 앞세운 에어버스 항공기는 무서운 속도로 보잉을 추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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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버스의 맹추격에 위기감을 느낀 보잉은 1997년 맥도널더글러스를 합병하며 명실공히 세계 최대 항공사로 몸집을 불렸다. 2007년 12년의 개발 끝에 선보인 중형 여객기 보잉 787 드림라이너의 성공에 이어 2015년 선보인 보잉 737 맥스 시리즈가 유례없는 히트를 치며 지난해 에어버스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보잉은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액 1,000억달러(약 113조원)를 넘기고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806대의 여객기를 고객사에 인도했다. 올해 목표치는 895~905대로 호기롭게 상향 조정했다.

이 시점에 터진 보잉의 연쇄 추락 사고로 세계 항공기 시장은 전례 없는 불확실성에 빠지게 됐다. 당장은 경쟁사의 위기를 틈탄 에어버스의 약진으로 양사 간 무게 추가 에어버스 쪽으로 기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세계 일부 항공사들은 보잉 737맥스 대신 에어버스 제품을 구매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정부는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에어버스 항공기 구매를 논의했으며 지난해 보잉기 사고를 겪은 인도네시아 라이언항공도 220억달러 규모의 항공기 주문을 에어버스로 갈아탈 계획이다. 중국도 이달 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프랑스 방문 시 에어버스 항공기 구매계약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번 사고가 수십 년 동안 굳어졌던 항공기 시장의 복점 구도가 깨지는 단초가 되며 업계 판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여행객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는 중국의 국영 항공기 제조사 ‘중국상용비행기(코맥)’가 보잉·에어버스와 함께 ‘빅3’로 성장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중국이 향후 20여년간 새 비행기 7,690대, 약 1조2,000억달러 규모를 도입할 것이라는 업계의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막대한 자금력, 자국 내 구매력, 저렴한 가격까지 4박자를 갖춘 코맥이 본격적으로 경쟁에 뛰어들 경우 그 파급력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항공 업계의 트렌드 변화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보탠다. 경기 침체로 여행 수요가 감소하고 대형기 주문이 줄어드는 가운데 중산층이 빠르게 증가하는 아시아 시장과 소형 기종 중심의 저비용항공사(LCC)가 새로운 고객으로 떠오르면서 후발주자들의 약진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향후 20년 내 코맥이 빅3로 등극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2017년 공개된 코맥의 중형 여객기 C919의 경쟁 모델이 바로 B737이자 A320이다. 또 러시아와 초대형 여객기 C929도 공동 개발 중으로, 이는 보잉 787 드림라이너, 에어버스 330의 라이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시장 환경이나 기술 측면에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세계 공통의 기준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불거진 이번 737맥스 사고가 미국과 유럽 정부의 비호 아래 보잉과 에어버스가 이끌어온 항공기 시장의 ‘황금기’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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