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뒷북경제]"고용지표 개선돼 다행이라고?"…노인 일자리만 잔뜩

60세 이상 취업자수만 1982년 이후 최대폭 급증

정부 재정 투입된 노인일자리 사업 덕

韓 경제 허리 30~40대 취업자는 기록적 감소

제조업 일자리 줄고 농림어업·보건서비스 등 재정 사업만 급증

"고용시장 왜곡 심각...규제 풀고 기업 부담 덜어줘야"




통계청은 지난 13일 2월 고용 통계를 내놨습니다. 취업자 수는 총 2,634만6,000명. 1년 전보다 26만3,000명 늘었습니다. 13개월 만에 최대 폭입니다. 지난해 취업자 수가 전년 대비 9만7,000명, 직전 1월 1만9,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던 것에 비하면 수치 자체는 일견 크게 개선됐습니다.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고용지표가 크게 개선됐다”는 긍정 반응을 내놨습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술 더 떠 “취업자 수가 20만명대로 회복돼 다행스럽다”며 안도감을 나타내기까지 했습니다.

고용지표는 정말 정부 평가대로 개선된 게 맞을까요. 그리고 홍 부총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도 될 만큼 다행스러운 수준인 걸까요.




홍남기(오른쪽) 경제부총리가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수출입은행에서 열린 ‘제10차 경제활력 대책회의 겸 제9차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자리로 가고 있다./연합뉴스홍남기(오른쪽) 경제부총리가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수출입은행에서 열린 ‘제10차 경제활력 대책회의 겸 제9차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자리로 가고 있다./연합뉴스


우선 연령대별로 취업자 수를 뜯어보겠습니다. 2월 취업자 가운데 30대는 11만5,000명, 40대는 12만8,000명이 줄었습니다. 30대는 금융위기 때인 2009년, 40대는 1991년 이후 감소 폭이 가장 큽니다. 한창 일하며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한국 경제 전체에는 역동성을 불어넣어야 할 ‘허리’인 30~40대에서 24만명 넘게 취업자 수가 줄어든 겁니다. 20대 이상 전 연령대에서 취업자 수가 줄어든 것은 30~40대 뿐 입니다.

취업자 수가 급증한 곳은 다름 아닌 60세 이상 노인층이었습니다. 60세 이상에서 무려 39만7,000개 일자리가 늘었습니다. 지난 1982년 통계 작성 시작 이후 최대 폭입니다. 노인 취업자 수가 이처럼 기록적인 증가세를 보인 것은 해당 연령층 인구 증가 영향도 있지만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 영향이 큽니다. 정부는 올해 약 8,200억원 규모의 노인 일자리 사업을 하고 있는데, 2월부터 사업 접수를 받았습니다. 낙엽 줍기, 관공서 안내, 어린이집 급식 보조 같은 하루 3시간짜리 노인 알바가 일자리로 대거 잡혔습니다. 말이 ‘일자리 사업’지 정부가 복지 차원에서 취약계층 노인에 용돈 좀 쥐어 주는 사업에 불과합니다. 정동욱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2월까지 25만명 정도가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취업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가 “고용지표가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개선됐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정도인 셈입니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간 일자리가 늘고 실업자가 줄어야 고용 지표가 좋아졌다고 평가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서 “30~40대 일자리가 계속 줄어든다는 게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일자리를 잃은 30~40대들이 편의점이나 치킨집 등 자영업에 뛰어들며 생계를 유지했지만, 최근에는 포화 상태에 다다른 자영업에 구조조정까지 몰아닥쳐 갈 길 잃은 가장들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1415A06 취업자 수 증감 추이


산업별로 봐도 안도하기는 어렵습니다. 정부 재정 투입 업종에서 역대 최대 폭으로 취업자 수가 늘었습니다.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23만7,000명)과 농림어업(11만7,000명)이 대표적입니다. 이들 두 업종 모두 지난 201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증가 폭이 가장 컸습니다. 한 경제 전문가는 “농림어업은 지금까지 취업자 수를 오히려 갉아먹었던 업종”이라면서 “선진 경제에서 농림어업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비정상적일 뿐 더러 경제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대목”이라고 말했습니다. 정 과장은 “농림어업 취업자 대부분은 60대 이상이고, 증가분의 절반 이상이 무급가족종사자”라고 설명했습니다.


대신 비교적 양질 일자리로 분류되는 제조업은 취업자 수가 15만1,000명이 줄었습니다. 지난해 5월 취업자 수가 줄어들기 시작한 이후 11개월 연속입니다. 지난 1월 30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선 건설업 취업자 수도 3,000명 줄어들며 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건설업에는 상대적으로 취약계층 취업자가 많은데, 최근 각종 부동산 규제 등으로 고용시장이 흔들린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에 민감한 도·소매(-6만명)와 사업시설 관리(-2만9,000명) 업종 취업자 수도 줄었습니다. 그나마 20개월 연속 감소하던 숙박·음식점업 취업자 수가 1,000명 소폭 증가세로 돌아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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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과거 ‘고용의 질 개선’의 근거로 삼았던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5만명 줄었습니다. 3개월 연속 감소세입니다. 또 다른 근거였던 상용직 근로자 수는 29만9,000명 늘었지만 임시·일용직은 3,000명 줄었습니다. 상용직이 증가했다 하더라도 여기에는 고용 계약 기간이 1년 이상인 비정규직 근로자도 포함돼 있어 이 지표를 고용 질 개선으로 연결 짓는 것도 무리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오히려 체감 실업을 의미하는 확장 실업률(고용보조지표3)은 13.4%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15~29세 청년층 확장실업률도 24.4%로 가장 높았죠. 실업률은 130만3,000명으로 2년 만에 가장 많았습니다.

13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용역 근로자 및 기간제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연합뉴스13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용역 근로자 및 기간제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고용 참사’에 눈 감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한 주 건너 한 주 꼴로 각종 대책과 방안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표 개선에 안간힘을 쓸수록 노인 일자리와 농어촌 일자리만 늘어나는 고용시장 왜곡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돈을 풀어 지표를 반등시키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 신사업이 활기를 띠게 만들고, 비용 부담을 덜어 기업 할 맛 하게 만드는 정공법을 택해야 할 때입니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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