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특파원으로 와서 놀란 것 중 하나가 교민이나 유학생들이 우리가 쓰는 한자 자형을 ‘번체자(繁體字)’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도 일부는 우리 한자를 번체자라고 했던 것 같다. 번체자는 중국이 붙인 이름이다. 원래 한자 자형이 복잡하다는 이유로 중국에서는 이를 대폭 줄여 간략화한 글자를 사용한다. 이른바 간체자다.
한자의 모양을 간단하게 하고 획수를 줄이는 간략화 추세는 전통시대부터 시작됐다. 중화인민공화국이 현재와 같은 간체자를 확정한 것은 지난 1964년이다. 대신에 원래의 한자에는 번체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간체는 상대적으로 편리하고 좋다는 의미를, 번체는 부정적인 의미를 각각 내포한다. 중국 당국은 라오바이싱(인민)의 습관을 바꾸기 위해 용어를 먼저 바꿨다.
최근 중국어를 배우는 한국인이 늘어나면서 덩달아 번체라는 용어 사용도 증가했다. 사람이 이기적이듯 국가도 마찬가지다. 자기 나라에 유리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원래의 한자는 ‘정자(正字)’다. 간략화한 것은 ‘약자’다. 현재 약자는 중국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사용하고 있다. 일본식 약자도 있고 대만·홍콩 등도 자신들만의 자형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현대 들어 한자를 간략하게 한 후 이를 ‘신자체(新字體)’라고 불렀다. 그래서 원래의 한자는 ‘구자체’가 됐다. 중국에서 쓰는 간체자나 일본의 신자체라는 용어는 모두 자국 입장에 맞춘 긍정적인 용어다. 반면에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는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정자나 정자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원래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는 대만도 ‘정자’라는 이름을 고수하고 있다.
용어 사용에서 중국에 경도된 것은 한자의 이름만이 아니다. ‘소수민족’이라는 용어도 그렇다. 중국은 자국을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라고 한다. 그리고 한족 외 55개 민족은 소수민족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별도의 민족명을 부르는 경우는 없다. 그냥 소수민족이다. 조선족도 소수민족에 속한다.
지금껏 한국에서도 그대로 소수민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다. 다만 이는 미국 등에서 사용하는 ‘마이너리티’라는 용어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중국의 경우 그들이 본의 아니게 다수민족에 스며들어 소수민족이 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몽골족은 수천 년 동안 자기 땅에 그냥 살아왔는데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소수민족이 됐다. 중국은 소수민족이라는 용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면서 이들이 주류인 한족의 통치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관습화한다. 현재 중국의 14억 인구 가운데 소수민족은 1억3,000만명에 달한다. 남북한 인구보다 많은데 소수민족이라는 식이다.
그들에 대해 소수민족보다는 ‘비(非)한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이것이 해당 민족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또한 우리가 조선족 사회를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중국어를 듣다 보면 거슬리는 단어가 또 나오는데 바로 ‘조선(朝鮮)’의 발음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이를 ‘차오셴’이라고 읽는다. ‘조’는 크게 두 가지 뜻과 발음이 있는데 방향을 의미할 때는 ‘차오’로, 아침은 ‘자오’로 읽는다. 한국인들은 조선을 ‘해가 뜨는, 아침의 나라’로 해석하지만 적어도 중국어 발음으로 볼 때는 그냥 의미 없는 한자의 나열이 되는 셈이다. 기자가 문의한 다수의 중국인은 보통 지명에 쓰이는 말이 ‘차오’이기 때문에 조선도 그렇게 읽는다고 답했다. 예를 들어 베이징에 있는 ‘조양구’라는 지명을 ‘차오양취’라고 읽는 식이다.
하지만 중국인도 ‘아침’일 때는 구별한다. 중국 CCTV에 ‘조문천하(朝聞天下)’라는 아침 방송 프로그램이 있는데 앵커들은 이를 ‘자오원톈샤’라고 발음한다. 영어로는 ‘모닝뉴스(morning news)’다. 과거 서울의 중국명이 ‘한청(漢城)’에서 ‘서우얼(首爾)’로 바뀐 것처럼 조선의 중국어 발음도 ‘자오셴’으로 바꾸도록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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