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선거제 개혁의 공감 조건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

정치권, 개혁안 도출 쉽지않아

중앙선관위·학자에 전권 부여를

패스트트랙 지정은 신중해야

김형준 명지대 교수김형준 명지대 교수



한 사회의 제도는 규칙과 절차의 접합으로 구성원들의 상호 작용이 전개되는 틀을 제공한다. 제도는 행위를 제약하기도 하고 유인하기도 한다.

통상 공직자를 선출하는 구체적인 절차를 선거제도라고 한다. 선거제도는 게임의 기본 규칙으로 민주정치의 핵심인 대의 과정의 본질을 규정해준다. 선거에서 선출된 대표자들은 국민을 대신해 국가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 따라서 대표자를 선출하는 데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선거제도는 대의 민주정치의 핵심 요소로 대두한다. 선거제도를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대의 민주정치가 활성화될 수도, 퇴보할 수도 있다. 가령 선거제도 자체가 왜곡돼 거대 정당이 소수 정당보다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면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선거는 제대로 기능한다고 볼 수 없다.

2016년 총선에서 거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은 ‘소선거구제와 단순다수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행 선거제도 덕분에 엄청난 이득을 봤다. 자신들이 얻은 득표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보너스율(의석률-득표율)은 각각 15.5%와 7.2%였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44석, 새누리당은 18석을 더 많이 획득했다. 반면 소수 정당인 국민의당과 정의당의 보너스율은 각각 -14.0%와 -5.2%였고 의석은 각각 45석과 17석 적게 배당받았다.


현행 선거제도의 이런 왜곡 효과가 나타나자 한국당을 제외한 민주당과 소수 야3당은 표의 등가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개혁 방안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추진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정당 투표로 총 의석을 결정한 후 당선인은 지역구 의석을 먼저 배당하고 그 나머지를 비례대표로 채우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담은 선거제 개편은 사실상 의회 무력화 시도이자 의회 민주주의 부정’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대신 ‘의원정수 10% 감축(270명)’과 ‘비례대표제 폐지’를 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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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에 왕도는 없다. 다양한 방법이 가능하며 실제로 전 세계가 다양한 제도를 채용하고 있다. 국민은 의원정수를 줄이고 투명한 절차를 걸쳐 전문성이 있는 비례대표 의원을 선정하고 지역주의가 사라지기를 원한다. 민주당과 소수 야3당은 비례성과 대표성의 강화, 한국당은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간의 조화성, 그리고 군소 정당 난립 방지를 원한다. 국민과 여야 정치권의 요구가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공감하는 선거제도 개혁안을 도출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해 당사자인 정치권이 선거제도 개혁에서 손을 떼고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와 전문 학자에게 전권을 주면 된다. 어떤 종류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채택되더라도 초과 의석이 발생해 필연적으로 의원정수는 늘어나게 된다. 기존 의원정수가 확대되지 않는 연동형 비례제를 채택하려면 의원정수를 300명에서 272명으로 줄이고 초과 의석을 억제하는 다양한 방안들을 검토해야 한다. 가령 지역구에서 2인 이상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도입하거나, 지역구(204명)와 비례구(68명) 의석 비율을 기존의 5.4대1에서 최소 3대1로 늘리고, 비례대표 명부를 권역별 대신 전국단위로 작성하는 것이다.

전국단위 명부로 변경하면 거대 정당이 특정 지역구 의석을 독점하면서 나타나는 초과 의석을 막을 수 있다. 권역별 연동형을 채택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2017년 9월 연방하원 선거에서 초과 의석이 무려 111석 발생했다. 반면 전국단위 연동형을 채택하고 있는 뉴질랜드는 같은 해 9월 총선에서 단 한 석의 초과 의석도 발생하지 않았다.

기존 비례대표 의석 배분 봉쇄 조항을 정당득표율 3%에서 5%로 상향 조정해 군소 정당 난립을 막는 방안도 필요하다. 비례대표 선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독일처럼 비례대표 후보 선출 전 과정을 녹취해 중앙선관위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게임의 룰인 선거제도 개혁은 투쟁이 아니라 합의에 의해 도출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야 4당이 추진하려는 선거제도 개혁안 패스트트랙 지정은 신중해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에서 비례성의 원칙 못지않게 여야 합의와 국민 공감의 원칙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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