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다들 오랜만에 나들이 잘 다녀오셨나요? 꽃샘추위와 함께 찬바람이 불면서 모처럼 미세먼지 없는 쾌청한 날씨를 맞았죠. 파란 하늘이 참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25일 기온이 다시 오르며 수도권 등 중부 지역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보이고 있네요. ‘삼한사미(일주일 중 3일 춥고 4일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뜻)’란 말이 정말 실감 납니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릴 때 우리는 어디에서 안심하고 숨 쉴 수 있을까요. 서울경제썸 기자들이 지난 수요일(20일) 서울에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됐던 날 미세먼지 간이측정기를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높은 미세먼지 방어율을 자랑하는 KF94 등급의 마스크를 쓰고 다녔지만 결과적으로 목이 사흘 정도 따끔거리더군요.
이날 저는 ‘인간 미세먼지 경보기’라 불리는 박원희 인턴기자와 함께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에서부터 광화문역, 종로3가, 탑골공원, 종로2가, 경복궁역 일대를 돌아다녔습니다. 중간중간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간이측정기로 공기 질을 확인했습니다. 식당과 카페도 들러 실내 공기 질도 측정해봤습니다. 이 중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청정구역은 얼마나 있었을까요? 지금부터 그 결과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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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역 이용할 땐 마스크 벗어도 될까?
우선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으로 향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참을 내려와 지하 역사에 들어갔죠. 미세먼지 간이측정기를 꺼내 전원을 켜보니 무서운 속도로 수치가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최고 미세먼지(PM10) 175㎍/㎥, 초미세먼지 105㎍/㎥를 기록했네요. 이날 포털사이트 날씨정보 상으론 미세먼지 수치가 125㎍/㎥(나쁨), 초미세먼지 수치는 94㎍/㎥(매우 나쁨)였습니다. 바깥보다 지하철 역사 안 공기가 더 오염됐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하철 플랫폼 안에서는 미세먼지 수치가 역사 입구보다 농도가 더 나쁜 201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플랫폼 안 많은 시민들은 대부분 마스크 없이 이동 중이었습니다. 저 역시 바깥에서는 마스크를 잘 쓰더라도 지하철역에 들어서면 답답해 마스크를 벗곤 했었는데, 이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지하철 내부에 들어서자 수치가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점심시간 가까운 시각 5호선 내부는 객실에 서너 명만 서 있을 정도로 한산했는데요. 떨어지던 미세먼지 수치는 60대에서 멈췄고 초미세먼지 수치도 40대에서 멈췄습니다. 초미세먼지는 여전히 ‘나쁨’ 수준이었지만 미세먼지는 ‘보통’ 수준으로 나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수치가 다시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초미세먼지 수치가 최대 99까지 찍더군요. 기분 탓일까, 역사 안도 뿌옇게 보였습니다.
■ 버스 탈 땐 언제 마스크를 벗어야 할까?
탑골공원을 지나 종로2가 버스정류장에 섰습니다. 저 멀리 빌딩 숲이 뿌연 안개 같은 먼지에 둘러 쌓여있습니다. 가까운 위치의 남산타워도 흐릿하게 보입니다.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의 공기 질은 어떨까요?
간이측정기는 여전히 빨간 경고등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미세먼지 수치는 165, 초미세먼지 수치는 90을 기록했습니다. 둘 다 ‘매우 나쁨’ 수준입니다. 버스 안에서 다시 측정해봐도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미세먼지가 119, 초미세먼지는 90으로 특히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초미세먼지 수치는 그대로였죠.
다만 해당 버스 안에는 미세먼지 필터나 청정기 시설이 없었습니다. 참고로 하루 뒤인 21일 퇴근길, 공기청정필터가 가동 중인 버스 안에서 같은 방식으로 쟀을 때는 초미세먼지 39, 미세먼지 48로 공기 질이 다소 개선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시는 시내버스와 지하철 내에 전용 필터와 청정기를 설치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67%의 시내버스(7,406대 중 4,967대)에 이 같은 필터가 설치돼 있다고 합니다. 올 연말까지 100% 장착될 예정입니다.
■ 식당과 카페, 어디 공기가 더 나쁠까?
점심을 먹으러 경복궁역 인근 식당에 들어섰습니다. 깨끗하고 넓은 내부 공간이 왠지 믿음을 주었죠. 측정기를 다시 꺼내보니 그 믿음은 완전히 깨졌습니다. 미세먼지 수치는 124로 ‘나쁨’ 수준이었고 초미세먼지 수치는 ‘매우 나쁨’인 94로 바깥 공기와 별 차이가 없었거든요.
이번엔 카페로 가봅니다.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유명 카페입니다. 무척 넓었지만 점심시간 직장인들로 만석이었습니다. 그만큼 공기 질이 나쁠 것이라 예상했죠. 결과는 미세먼지 85, 초미세먼지 75였습니다. 미세먼지 수치는 개선됐지만 초미세먼지 수치는 여전히 ‘나쁨’ 수준 이었습니다. 빈 자리가 생긴 카페 입구석에 앉아 측정기를 지켜보니 문이 열릴 때마다 수치가 요동치는 것이 보였습니다. 여러분, 입구 자리는 웬만하면 피하십시오.
결국 우리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서야 미세먼지 마스크를 벗을 수 있었습니다. 공조기가 돌아가고 있는 건물 내부는 미세먼지 39, 초미세먼지 19로 ‘청정구역’이었죠. 역시 파랑새는 가까이 있었나 봅니다.
■ (주의) 위 수치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해 10월 배포한 초미세먼지(PM2.5) 간이측정기 가이드북에 따르면 “국내외에서 사용하고 있는 다양한 간이측정기들은 실시간으로 측정값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반면 측정결과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 행정적인 목적으로는 사용하기 어렵다”고 돼 있습니다.
국내에서 초미세먼지 수치는 포집된 미세먼지를 직접 저울로 재 보는 ‘중량법’으로 측정하고 있는데, 시중의 간이측정기들은 레이저를 이용한 산란광의 크기로 입자의 크기 및 농도를 결정하고 평균적인 밀도를 가정하여 농도를 나타내기 때문에 중량법보다 정확도가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중량법은 정확하지만 24시간 동안 먼지를 포집해야 하고 측정 전후 일정한 온도 및 습도를 유지해야 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습니다. 반면 간이측정기들은 실시간으로 공기 오염도를 측정할 수 있어 가정 등에서 많이 이용하고 있죠. 환경부는 이 같은 간이측정기는 국가측정 결과의 보완적인 용도로만 이용하고 주변 농도를 확인하거나 참고 및 교육 자료로만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환경부는 빠르면 올해 ‘간이측정기 성능인증제’를 시행할 예정입니다.
■ 덧, 예방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마스크는 꼭’
초미세먼지가 심했던 날 야외 취재를 해보니 우리 주변 일상생활 공간에서 미세먼지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인턴기자 못지않은 ‘미세먼지 조기경보기’인 저는 늘 주변 동료에 마스크를 쓰라고 권하곤 합니다. 이 글과 영상을 보신 독자분들도 마스크 꼭 챙기시길 권해드립니다. 아무리 1980년대보다 공기 질이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공기가 좋은 것은 아니니까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국가별 연평균 초미세먼지(PM 2.5) 자료(2017년 기준)를 보면 한국은 35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공기 질이 나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의 연평균 초미세먼지 수치는 25.1로 회원국 평균값인 12.5의 두 배 이상을 기록했죠. 이는 세계 주요국들 중에서도 인도(90.2), 중국(53.5), 베트남(30.3), 남아프리카공화국(25.0)에 이어 5위에 해당하는 나쁜 공기 질입니다.
다만 미세먼지 마스크를 사용할 때 한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미세먼지 마스크는 호흡량을 감소시켜 신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거든요. 환자, 노약자 등 민감한 이들은 의사와 상담하시길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