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추경(追更)의 추억

김정곤 논설위원

편성요건 및 규모 놓고 논란 반복

추경은 주고받는 고도의 정치행위

한은 금리인하 압박도 한층 커져

국가 재정은 경제의 최후 안전판

김정곤 논설위원





또다시 추경(追更)의 계절이 돌아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 3년 연속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될 모양이다. 박근혜 정부까지 포함하면 5년 연속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재부 내부 검토를 진행 중이고 가능한 속도를 내겠다”며 추진을 공식화했다. 미세먼지 대책에다 경기 대응까지 포함해 오는 4월 중으로 추경안을 제출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경기 대응이 포함된 만큼 편성 요건과 규모를 놓고 앞으로 여야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추경은 이미 국회를 통과한 본예산을 수정하는 만큼 요건이 엄격하다. 국가재정법 89조에 구체적인 요건이 적시돼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역대 정부가 편성한 추경을 보면 국가재정법을 사실상 고무줄처럼 활용했다. 처음에는 요건이 맞느니 맞지 않느니 여야가 설전을 벌이다가도 결국은 통과됐다. 국회에 제출된 추경이 통과되지 않은 사례는 전무 하다. 추경이 기본적으로 여야가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고도의 정치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번 추경 역시 예상되는 초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밀고 당기기를 거듭하다 결국 통과될 것이 분명하다.


추경을 앞두고 정부가 양치기 소년이 되는 것도 비슷하다. 홍 경제부총리는 “전혀 검토된 바 없다(2월 20일)”에서 미세먼지 추경을 검토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3월 6일) 이후 “검토 중(3월 22일)”이라고 말을 바꿨다. 당초 정부의 계획에 없던 추경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재정확대 권고를 명분으로 ‘미세먼지+경기 대응’ 패키지 추경으로 탈바꿈할 태세다. “경기지표가 개선되는 모습(3월 그린북)”이라고 했던 정부가 설마 경기 대응 추경을 위해 경기 전망까지 바꿀까. 그러나 과거 그랬던 것처럼 추경을 위해서라면 부진한 경기지표를 들이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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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은 기재부 예산실 직원들에게 총성 없는 전쟁이다. 편성 결정부터 규모 산정 등 내부 논의, 당정 협의 등을 거쳐 국회에 제출되기까지 적어도 한 달은 걸린다. 통과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역대 최장기간 국회에 계류된 추경은 지난 2000년 저소득층 생계안정용인데 통과까지 106일이 걸렸다. 부총리와 2차관이 국회 설득에 나서는 동안 예산실 직원들은 여의도에서 대기하며 사실상 야전 생활을 이어간다.

적어도 수 조원 이상의 국민 혈세가 추가로 투입되는 만큼 이왕 할 추경이라면 효과를 높여야 한다. 재정 전문가들은 “선제 대응, 확실한 신호, 충분한 규모” 등 삼박자가 맞아야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적절한 시기에 편성하고 경제 주체들에게 확실한 신호를 줘 심리 개선 효과를 노려야 한다는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규모와 사용처다. 추경 사업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던 과거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들은 “돈을 쓸 사용처를 찾아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고는 했다.

폴리시믹스(policymix·정책조합)도 중요하다. 폴리시믹스는 거시경제 정책의 양대 축인 재정과 통화를 조합해 시너지를 내는 정책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부총리였던 최경환은 금리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척하면 척”이라는 말로 한은의 독립성 훼손 논란을 일으켰다. 국내외 경기 부진에도 아직 금리 인하 계획은 없다는 게 한은의 입장이지만 추경이 공식화된 만큼 금리 인하 압박도 그만큼 커지게 됐다.

역대 정부는 추경을 사실상 경기부양을 위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왔다. 나라 살림을 담당하는 재정 라인은 성장률을 책임지는 정책 라인과 항상 추경을 앞두고 부딪혔다. 결과는 항상 정책 라인의 승리였다. 추경은 언제나 정치적이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기재부 재정 라인과 정책 라인은 사실상 한 몸이 됐다. 과거 예산실 고위 관계자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재정은 경제의 최후의 안전판이에요. 재정을 어떤 수단으로 사용할지는 정권이 결정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미래를 같이 걱정해야 합니다.”/mckids@sedaily.com

김정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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