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는 슬픈 드라마야. 아예 모르는 게 약이지.” 영화 ‘타짜’에서 제자가 되겠다는 고니(조승우 분)에게 평경장(백윤식 분)이 한 말이다. 고니를 제자로 받아들인 후에도 평경장은 “누나 돈 찾으면 화투 끊을 수 있겠냐”며 “못 끊으면 손가락이라도 자르라”고 충고한다. 고니는 그러나 도박으로 날린 누나의 이혼 위자료보다 몇 배를 따고도 화투를 끊거나 손가락을 자르지 않고 ‘도박의 꽃’ 정마담(김혜수 분)의 ‘선수’로 계속 뛴다. 도박은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평경장이 고니에게 한 말처럼 손가락을 자르지 않고는 그만두기 힘들다는 것이 노름판의 정설이다.
요즘은 화투나 카드처럼 손에 의지하지 않고도 빠져들 수 있는 도박이 도처에 널렸다. 경마·경륜·경정도 있고 카지노·복권·스포츠토토에다 소싸움에도 쉽게 베팅할 수 있다. 국가가 관리하는 이들 일곱 가지 합법 사행산업의 규모는 지난 2017년 기준으로 22조원이다. 10년 전인 2008년(16조원)에 비해 36%나 늘었다. 합법적인 것이 이 정도다. 불법도박 규모는 정확한 집계가 불가능하다.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불법 사행산업 규모는 84조원으로 추정됐지만 일각에서는 그 두 배쯤으로 보기도 한다.
지금도 펜션과 보드게임 카페, 비닐하우스 등을 돌며 많게는 수백억원에 달하는 판돈을 걸고 도박판을 벌인 일당이 붙잡혔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리지만 대세는 온라인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하우스’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PC나 휴대폰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불법 사이버도박 규모는 2011년 17조원에서 2015년 25조원으로 급증했다. 사이버도박이 전체 불법 사행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육박한다. 그래서 경찰도 최근 들어 사이버도박 단속에 집중한다.
사이버도박이 횡행하는 것도 문제지만 참여자의 연령대가 갈수록 낮아지는 것은 우려를 더욱 키운다. 지난해 8~10월 이뤄진 경찰청의 특별단속에서 적발된 사이버도박 행위자 중 20대(41.5%)가 가장 많았고 10대도 5.7%나 됐다. 유승훈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경남센터장은 “처음에는 용돈으로 재미삼아 시작한 도박에 점점 빠져들면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친구를 상대로 갈취·폭행하거나 사채에까지 손을 대는 경우도 있다”면서 “고리대금을 이용하다 1억원까지 빚이 불어난 학생을 상담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주사위·검투·복권 등 다양한 게임이 성행했던 서양처럼 우리나라 도박의 역사도 유구하다. 신라의 왕과 귀족들은 주사위놀이로 밤을 지샜고 고려시대에는 스포츠도박에 해당하는 격구가 유행했다. 조선시대에는 쌍륙과 투전이 도박판을 평정했다. 목민관의 바른 몸가짐을 강조했던 다산 정약용도 황해도 곡산부사로 재직할 때 절도사·기생 등과 어울려 쌍륙 도박을 즐겼을 정도다. 일제시대에 들어온 화투는 지금도 도박의 대명사다.
최근 탤런트 차태현과 개그맨 김준호가 해외에서 내기골프를 즐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다. 도박의 동의어인 노름은 ‘놀음’과 ‘놀이’에서 파생됐다. 내기놀이가 발전해 도박이 된다. 두 사람의 행위가 놀이인지 도박인지는 모호하지만 ‘패가(敗家)’까지는 아니더라도 ‘망신(亡身)’을 당했다. 다산은 말한다. “도(賭)라른 것은 놀이로 탈취하는 것이요, 박(博)이라는 것은 주고받는 것이다. 이러한 내기놀이는 심보가 나빠지고 재산을 탕진하며 가문과 친족들의 근심이 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