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맥주업계 1위인 오비맥주의 갑작스러운 가격 인상 결정을 놓고 뒷말이 끊이질 않고 있다. 통상 1~2개월 전 주류 도매상을 통해 가격 인상 계획을 알려지던 관행을 깨고 기습 인상을 발표한 것 자체가 이례적인데다 정부의 주세법 개정안 발표를 눈앞에 둔 시점이라는 점도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오비맥주는 지난달 26일 카스, 프리미어OB, 카프리 등 주요 맥주 제품의 공장 출고가를 4일부터 평균 5.3% 인상한다고 밝혔다. 주류업계에서는 오비맥주의 기습적인 가격 인상 발표를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통상 3~4년마다 제품가격을 올리는 주류업계의 경우 보통 한 두 달 전부터 거래 도매상을 통해 가격 인상을 알리는 게 관행이었다. 때문에 최근 오비맥주가 출고가 인상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을 때도 실제 인상 시점은 빨라야 5~6월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또 일각에서는 하이트진로(000080)가 9년 만에 내놓은 신제품 ‘테라’를 견제하기 위해 인상 소문만 흘리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하지만 오비맥주는 예측을 깨고 4월 초 인상 계획을 밝혔다. 주류업계에서는 오비맥주의 가격 인상 움직임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업계 관계자는 “도매상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돌지 않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며 “기습적인 가격 인상의 속내가 뭔지 궁금할 따름”이라고 전했다.
오비맥주는 원부자재 가격과 관리비용 상승 등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주세법 개정안 발표를 코앞에 두고 가격을 올렸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는 맥주의 주세체계를 기존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꾸는 내용의 주류세법 개정안을 이달 내로 발표할 예정이다. 종량세가 도입되면 국산 맥주는 세율이 낮아져 출고가를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오비맥주가 종량세 도입 전에 미리 출고가를 올려 수익을 높이는 전략을 택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또 가격 인상에 앞서 정부 눈치를 봐야 하는 국내 기업과는 달리 모기업이 벨기에의 AB인베브라는 점도 한몫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는 최근 AB인베브의 유동성 위기설도 맞물려있다.
오비맥주의 가격 인상에도 2~3위인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는 아직 인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이트진로는 지난달 ‘테라’를 기존 제품과 동일한 출고가 내놓은 마당에 다시 가격을 올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종량세 도입이 가시화된 시점에서 비난 여론을 무릅쓰고 가격을 올리는 것도 부담이다. 결국 오비맥주로서는 잃을 게 없는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가격 인상 전에 물량을 확보해야 하는 도매상의 특성을 이용해 갓 출고된 경쟁제품 ‘테라’에 타격을 줄 수도 있고, 설령 경쟁사와의 출고가 차이로 점유율을 일부 빼앗기더라도 수익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