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관법은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소비자의 피해를 막겠다며 구체적인 성분이나 유통과정을 공개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 보듯 안전성을 확보하는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부가 충분한 준비기간과 면밀한 검토 없이 한꺼번에 규제 일변도로 몰아붙이다 보니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화학혼합물 성분 공개만 해도 수십년간 쌓아온 기술 노하우가 새 나가는데 이를 일방적으로 공개하라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크다. 법원이 얼마 전 반도체공장의 작업환경측정 보고서 공개에 신중한 입장을 취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확실하게 위해성이 입증된 분야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올해 말로 유예기간이 만료되면 산업계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사실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계는 저압가스 배관 검사 의무화로 1년 이상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실정이다. 과도한 검사비용을 떠안아야 하는 중소기업들도 경영난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설상가상으로 화관법 시행 이전에 완공된 공장마저 까다로운 안전기준이 소급 적용되는 바람에 기업들은 막대한 투자부담과 생산차질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한국의 까다로운 환경 규제는 급기야 무역갈등으로 번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정부는 현실과 괴리된 과도한 규제가 불필요한 긴장관계를 초래하고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유례없는 규제를 완화해 기업의 숨통을 터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