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임계선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러시아 지원 받는 베네수엘라

美 압박전술 통하지 않는데...

트럼프 '푸틴 비위맞추기' 하나

파리드 자카리아파리드 자카리아



(Trump‘s red line on Venezuela)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교정책과 결의가 중요한 시험대에 올랐다. 트럼프 행정부는 니콜라스 마두로를 베네수엘라의 합법적 대통령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임시 지도자로 지지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군부를 향해 마두로의 명령을 따르지 말라고 촉구했다. 이 같은 선언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선포한 ‘레드라인’보다 훨씬 강력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트럼프의 압박전술은 통하지 않았다. 마두로는 저항 태세를 강화했고 베네수엘라 군부 역시 그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이지 않았다. 미국의 제재로 베네수엘라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 있으나 이 역시 마두로 지지자들 사이에 사면초가의 고립된 심리 상태를 불러일으켜 강력한 저항 의지와 내부 결속을 다지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다소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쿠바와 북한·이란에서 이미 경험한 상황이다.

베네수엘라는 대단히 복잡한 정치 상황을 지닌 분열된 국가이고 우고 차베스가 남긴 정치적 유산의 계승자인 마두로는 빈민층과 농촌 지역의 지지를 받고 있다.

모스크바는 최근 베네수엘라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했다고 시인했다. 이에 앞서 약 100명의 러시아군을 태운 러시아 군용기가 베네수엘라에 도착했다. 이는 마두로를 띄우기 위해 모스크바가 취한 일련의 조치 중 가장 최근의 것에 해당한다.

러시아는 뭇매를 맞고 있는 카라카스 정부에 밀과 무기·크레디트와 현금 지원을 제공해왔다.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에 총 200억달러에서 250억달러 상당의 투자를 한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러시아는 미국에 기반을 둔 베네수엘라 정유사 시트고의 지분을 절반 가까이 손에 넣은 상태다. 시트고는 베네수엘라 정부의 주요 세수원이다. 베네수엘라군이 사용하는 장비 역시 거의 예외 없이 러시아제다.


베네수엘라에 취한 조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개인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최근 몇 년간 베네수엘라 경제가 붕괴되고 정치적 불안정성이 커지자 대부분의 러시아 기업들조차 지나친 리스크를 이유로 들어 투자를 중단하는 등 마두로에게 등을 돌렸다. 그러나 윌슨센터의 요청에 따라 보고서를 작성한 블라디미르 루빈스키는 러시아의 초대형 국영 석유사 로스네프트가 베네수엘라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마두로에 대한 지지를 오히려 확대했다고 밝혔다. 로스네프트를 이끄는 이고리 세친은 러시아의 2인자로 불릴 정도로 푸틴과 막역한 사이다. 다시 말해 푸틴은 마두로에게 ‘올인’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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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부분적으로 옛 동맹국에 대한 지원이기도 하고 글로벌 석유시장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늘리려는 의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글로벌한 규모의 반미동맹체를 만들어 미국의 의도를 좌절시키고 더욱 다중화된 세계질서를 구현하려는 푸틴의 핵심적 대외정책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함이다. 푸틴이 취한 조치들은 1823년 먼로 독트린으로 외세의 서반구 개입을 경고한 미국을 조롱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이제 워싱턴은 모스크바가 미국의 또 다른 레드라인을 조롱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둘 것인지 대답해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해 미국과 러시아는 병립이 불가능한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워싱턴이 구두경고를 행동으로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1년 후 우리는 러시아의 무기와 현금 지원을 받아 권력기반을 공고히 다진 마두로 정권을 보게 될 것이다.

미국의 현 행정부는 러시아의 베네수엘라 개입에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트럼프 자신이 직접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에서 발을 빼야 한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거의 언제나 푸틴을 겨냥한 비난을 자제하고 크고 작은 일에 러시아의 편에 섰던 트럼프로서는 대단히 이례적인 발언을 한 셈이다. 전 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였던 마이클 맥폴도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에서 “트럼프는 푸틴의 외교정책을 지지하는 놀랄 만큼 일관된 패턴을 보인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트럼프는 유럽 동맹국들을 향해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라는 으름장을 놓았고 미군의 일방적인 시리아 전면 철수를 발표했다. 그뿐 아니다. 모스크바가 지난 2016년 치러진 미국의 대선에 개입했다는 국내 정보기관들의 일치된 견해가 나오자 그는 “푸틴 대통령 본인이 직접 아니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며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맥폴은 “미국의 국익에 영향을 주지 않는 사소한 이슈들에 대해서조차 트럼프는 푸틴의 편에 섰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왜 지금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두둔하는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는 몬테네그로가 제3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될 것이라며 두려움을 표명하는가. 이들은 모두 푸틴의 노선이다. 왜 미국의 대통령이 그의 메아리 노릇을 하는 것일까” 등등 맥폴의 질문은 이어진다.

나는 칼럼에서 러시아와 트럼프 사이의 유착이나 음모에 대한 혐의를 제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단지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내놓을 증거를 기다려보자고 썼을 뿐이다. 그러나 풀리지 않은 진짜 궁금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왜 트럼프는 어떤 이슈에 관해서건 푸틴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꺼렸을까. 이제 베네수엘라는 트럼프가 마침내 푸틴 비위 맞추기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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