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연필로 쓰기] 연필로 꾹꾹..노년에 비친 진득한 세상사

■ 김훈 지음, 문학동네 펴냄




작가 김훈은 위대한 소설가지만 그의 산문을 아끼는 독자들도 상당히 많다. 김훈의 수필집 ‘자전거 여행’과 ‘밥벌이의 지겨움’은 소설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 못지않은 스테디셀러다. 그가 날카로우면서도 정확한 문장으로 쌓아올린 글들은 한국어로 된 산문이 가닿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경지를 유감없이 펼쳐 보인다.

‘연필로 쓰기’는 김훈이 ‘라면을 끓이며’ 이후 약 3년 6개월 만에 내놓은 산문집이다. 모두가 ‘디지털’을 말하는 시대에 여전히 네모 반듯한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쓰는 작가의 오랜 습관을 제목으로 내걸었다. 무수한 파지가 쌓이고 지우개 가루가 쌓인 끝에 200자 원고지 1,156매 분량의 글이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다.


육필의 노동을 통해 글 쓰는 행위의 숭고함을 매 순간 되새기는 작가는 몸을 써서 밥을 벌어먹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 어린 헌사를 바친다. 김훈은 ‘분뇨수거 작업자들은 고난도의 기술과 오랜 경험을 가진 전문직 노무자들’이라며 ‘그 처리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거룩한 노고에 감사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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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칼의 노래’를 통해 이순신 장군의 생애를 되짚은 이유를 설명할 때는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의 본질을 성찰하기도 한다. 그는 모름지기 지도자란 민주적인 리더십도 필요하지만 대다수 군중이 피해가고 싶어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는 망설임 없이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과거에 김훈은 산문에 대해 ‘노인의 장르’라는 정의를 내린 적이 있다. 청년이라고 수필을 쓰지 말라는 법은 없으나 생로병사의 희로애락을 충분히 경험한 뒤에야 제대로 된 문장을 빚을 수 있다는 소신을 담은 말이었다. ‘연필로 쓰기’는 일흔을 넘긴 노인이 원숙한 눈으로 바라본 세상사의 진경을 담고 있다. 1만5,500원.

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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