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정치·경제계에서 주목할 만한 이벤트는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 원로들에게 정책과 관련해 ‘쓴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일 청와대로 전윤철 전 감사원장,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등을 초청해 점심을 함께하며 경제상황과 정책 방향에 대한 조언을 들었습니다.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박봉흠 전 기획예산처 장관, 정운찬 전 국무총리, 김중수 전 한은 총재 등 7명의 원로가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경제원로 “소주성 보완하라” 한목소리
행사 종료 후 청와대가 전한 참석자들의 발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소득주도성장을 보완하라’는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 때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내고 노무현 정부 때 감사원장을 역임한 전 전 원장은 “소주성이 양극화 해소 등을 위해 가야 할 방향이지만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근로제와 관련해 시장 수용성을 감안,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역시 참여정부 때 한은 총재를 지낸 박승 전 총재도 “노동계에 포용 문호를 열어놓되 무리한 요구에는 선을 그어 원칙을 가지고 대응해야 한다”는 직언을 했습니다. 박봉흠 전 장관도 “기업가와 노동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모두를 포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업가와 대기업도 보듬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靑이 전하지 않은 대화 속엔...“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 같이 갈 수 없다” 수위 높은 쓴소리
청와대가 전한 참석자들의 발언 외에 실제 현장에서는 이보다 수위가 높은 말들이 나왔다고 합니다. 전 전 원장은 행사 종료 후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소주성과 혁신성장이 같이 갈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소주성은 기업의 이익을 근로자에게 많이 나눠주는 정책입니다. 반면 혁신성장은 기업이 근로자 임금을 높이기 보다는 사내유보를 많이 해 기술개발에 투자,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므로 함께 가기 힘든 정책이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경제계에서는 소주성과 혁신성장이 충돌소지가 있다는 말이 많았죠. 이 말을 문 대통령 앞에서 꺼낸 셈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참석자도 “최저임금, 주52시간 정책, 과격 노조 문제 등을 지적하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전했습니다.
◇文대통령 “소주성은 족보가 있는 이야기” 바꾸지 않을 듯
이는 현 정부의 ‘아군’의 입에서 나온 직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전 전 원장, 박 전 총재, 박 전 장관 모두 참여정부 때 인사들이죠. 야당의 비판이야 정치공세로 치부할 수 있지만 이들 원로의 지적은 문 대통령으로서는 흘려듣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이 이런 충언을 반영해 정책 기조를 바꿀까요. 우선 소주성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로 시민사회단체를 초청한 자리에서 “소주성이라는 말은 상당히 세계적으로 족보가 있는 이야기”라고 하는 등 소주성을 두둔하는 발언을 다시 한 번 꺼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률 대폭 둔화 등 ‘스텔스식 정책변화’ 여부 주목
하지만 내용 면에서 변화가 있을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을 대폭 둔화시킨다든지 등으로 시장에서 정부의 입김을 줄이고 시장원리를 존중하는 ‘스텔스식 정책변화’가 있을지 주목됩니다. 문 대통령도 원로 간담회에서 “국민들이 가장 걱정하는 대목이 경제”라고 말해 경제정책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습니다. 지난해 경제가 악화할 때, 경제체질이 바뀌는 과정에서의 ‘성장통’이라는 게 문 대통령의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가도 경제가 나아지지 않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한편, 문 대통령과 경제원로의 간담회에서 박 전 총재, 김중수 전 총재 등 전직 한은총재가 참석해 화폐단위변경(리디노미네이션)을 논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한 참석자는 “논의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