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구찬 선임기자의 관점] 인플레에 긴급명령권 발동…예금동결 조치로 시장 대혼란도

■두 차례 화폐개혁 전례 보니

1953년 100대1…효과 크지 않아

1962년 지하자금 막으려 10대1로

어음부도율 치솟아 한달만에 해제

0815A38 해외의 리디노미네이션 현황






1945년 광복 이후 두 차례의 화폐개혁이 있었다. 한국전쟁 중 인플레이션이 극심하자 이승만 정부는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을 발동해 1953년 2월 화폐개혁을 전격 단행했다. 화폐단위를 ‘원’에서 ‘환’으로 변경하고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화폐액면가를 100대1로 축소했다.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전쟁통에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턱없이 부족한 탓에 물가 잡기가 쉽지 않았다.


2차 개혁은 5·16 군사정부가 1962년 6월 단행했다. 교환비율은 10대1. 지금의 화폐단위 ‘원’은 이때 만들어졌다. 국회를 해산한 군사정부는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열고 ‘긴급통화조치법’을 제정·통과시켰다. 2차 개혁은 물가안정 목적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부정축재 자금을 비롯한 지하자금의 산업 자본화를 겨냥했다. 일정 금액 이상 고액에 대해 예금 인출과 유통을 전면 금지한 충격적 조치는 그래서다. 음성 자금을 동결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장차 양성화 과정을 통해 경제개발 자금으로 활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금융시장부터 쑥대밭이 됐다. 신용경색이 뚜렷해지면서 어음부도율이 치솟는 등 경제 전반에 파장이 커지자 군사정부는 예금동결 조치를 1개월 만에 해제하고 말았다. 화폐개혁 실패의 자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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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목 충북대 교수는 ‘우리나라 통화개혁 비교연구’ 논문에서 “두 차례의 화폐개혁은 단기적으로 물가안정에는 기여하지 못했다”면서 “이후 시행한 재정금융 안정화 대책이 물가안정에 주효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2차 화폐개혁 때 달러당 130원인 환율이 225원으로 현실화했다”며 “이는 개방경제로 이행하는 데 기초를 닦았다”고 평가했다.

한편 우리나라 화폐단위가 ‘원’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자명한 사실이지만 법적 근거가 한국은행법에 등재된 시기는 불과 7년 전인 2012년이다. ‘대한민국 화폐단위는 원으로 한다’는 법 조문은 1962년 제정한 긴급통화조치법 제2조에 담겼는데 50년 동안 한은법을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직 한은 간부는 “한국은행권을 발행하는 한은이나 화폐 업무를 관장하는 정부 모두 무관심했다”며 “사문화한 법률에 근거해 화폐를 발행한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chans@sedaily.com

권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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