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사법요직 50% 넘보는 우리법연구회

최근 요직 인사 특정단체에 편중... 정치·이념 편향 논란

우리·인권법 출신, 헌재·대법에 8명... 법관회의 의장도

“나태와 독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우리법연구회에 가입했을 뿐 결코 정치적 이념을 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9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 앞서 문형배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정치 편향 우려가 있다는 걸 잘 안다”면서 이같이 해명했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의 김연철 통일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임명 강행 논란으로 국회가 파행을 겪는 와중에 열린 이날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은 “헌재마저 특정 성향 법관으로 채운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문 후보자가 진보 성향 판사 모임으로 분류되는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인데다 이 연구회의 후신으로 알려진 국제인권법연구회 발기인이었다는 점을 들어 ‘이념 편향’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최근 외부 단체로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법원 내부 조직으로는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들이 사법 요직을 ‘쌍끌이’하는 현상은 법조계에서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특히 해당 연구회 회원들의 경우 그 수가 3,000여명의 판사 가운데 적게는 2%에서 많게는 10% 남짓에 불과한데도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비중은 절반 가까이에 달해 “편중 현상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처음에는 사법부의 다양화 측면에서 그동안 소외됐던 인사들을 중용하는 걸 긍정적으로 생각했으나 이제 너무 노골적으로 특정 연구회 출신들을 기용하다 보니 균형이 무너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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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헌법재판소의 경우 문 후보자와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임명될 경우 두 연구회 출신 재판관만 전체 9명 중 4명에 달한다. 이 후보자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창립 멤버 33명 중 한 명으로 남편인 오충진 변호사 역시 판사 시절 우리법연구회 회원이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은 김명수 대법원장,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과 함께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이며 김기영 재판관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전원합의체에 참여하는 대법관 13명 중에서도 두 연구회 출신은 지난해에만 2명이 더 늘어 총 4명이 됐다. 두 연구회에서 모두 창립 멤버와 회장을 지낸 김 대법원장을 비롯해 노정희·박정화 대법관과 김상환 대법관이 각각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들어서는 대법관·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마다 문 후보자와 같은 정치 편향 논란이 무한 반복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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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연구회 출신의 약진은 사법부 최고위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8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인 오재성 전주지법 부장판사가 의장에 당선됐다. 초대 의장인 최기상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에 이어 같은 단체 회장이 연속해서 의장이 된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사법부 개혁안을 발표하며 전국법관대표회의를 법정기구로 격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우리법연구회는 1988년 2차 사법파동을 주도한 판사들이 만든 모임이다. 노태우 정부가 전두환 시절 인물인 김용철 대법원장을 유임시키려 하자 판사 355명이 반기를 든 사건이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우리법연구회의 지지를 받은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한때 120명까지 세를 불렸지만 보수 진영으로부터 ‘법원 내 하나회’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2010년 이후 활동이 뜸해졌다. 김 대법원장이 초대 회장인 국제인권법연구회는 2011년 출범한 공식 학술모임이다. 현재 500여명의 회원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법연구회 출신은 전체 판사의 2~4%,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은 다수의 유령 회원까지 모두 더해도 15% 수준에 불과하지만 법원 내 존재감은 이보다 훨씬 크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두 연구회 출신들을 보수 정권 시절 ‘법조계 카르텔’이라 불렸던 민사판례연구회와 비교하기도 한다. 민판연은 1977년 곽윤직 서울대 법대 교수의 제자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사조직으로 ‘서울대 법대 졸업, 남성, 서울중앙지법 초임’ 등을 기준으로 회원을 받은 엘리트 판사 모임이다. 한 지방법원 판사는 “우리법연구회와 민판연을 정치적으로 진보·보수 단체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법원 인사가 특정 모임 출신으로만 채워질 경우 불필요한 의심과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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