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한국외교 ‘불편한 진실’ 마주할 때

정상범 논설위원

교역위축에 기업인들도 좌불안석

北비핵화 위해 ‘근린외교’ 다지고

여론 뚫고 미래 내다본 DJ 본받아

리스크 감수할 정치리더십 절실

정상범



요즘 기업인들을 만나보면 한국 외교를 걱정하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사업가들이 본업에나 신경을 쓰지 주제넘은 소리냐며 타박하면 상황 자체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해외 거래처와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분위기가 예전보다 훨씬 빡빡해졌다는 것이다. 일본과 거래하는 기업들은 경제보복이 현실화하면 반도체 소재 등 핵심 부품을 들여오는 우리가 입을 타격이 훨씬 클 것이라며 불안해하고 있다. 경제외교가 흔들린다는 우려가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환경이 갈수록 꼬이고 있다. 북한 문제는 꽉 막힌 상태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중국과의 사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미국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1박 3일의 긴박한 일정을 소화하는 것도 이처럼 꼬인 국면을 풀려는 노력일 것이다. 하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외교·안보환경에서 한반도 주변 4국의 전략적 가치를 다시 따져보고 효율적인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당장 한일관계만 해도 200만명으로 추산되는 강제징용 피해자의 소송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다 위안부 문제 역시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역사교과서나 독도에 이어 경제제재 압력까지 거론되는 등 일본의 공세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할 때 과연 언제까지 눈앞의 과제에 고개를 돌린 채 최악의 한일관계를 그냥 지켜봐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독일의 통일과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헬무트 콜 전 총리는 당시 ‘하나의 강한 독일’을 경계했던 유럽 각국과 옛 소련을 설득해 통일을 실현해냈다. 콜 전 총리는 경제난에 시달렸던 소련에 아무 조건 없이 50억서독마르크의 차관과 생필품까지 안겨줬다. 콜 전 총리는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며 양국 간의 관계 개선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통일의 호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주변 국가들의 이해와 협조가 절실하다는 판단에서다. 콜 전 총리가 ‘통일의 아버지’에 머무르지 않고 통합 유럽의 지도자로 불리게 된 것도 독일 통일과 유럽 통합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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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외교정책도 마찬가지다. DJ는 남북 화해를 위해 우선 주변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튼튼히 다지는 데 주력했다. 한미관계는 물론 일본과 중국까지 다독거려가면서 활발한 대북사업을 펼쳤다. 동북아 전체가 평화 기조로 전환하는 시동을 걸었던 셈이다. DJ가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손잡고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어렵게 탄생시킨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한일 양국이 상호 인정을 통해 20세기를 매듭짓고 동북아 냉전 구도를 해체하는 데 협력한다는 다짐이야말로 새로운 미래 청사진을 보여준 획기적인 내용이었다.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공존 번영의 해법을 제시한 지도자의 리더십이 돋보일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 국민외교를 펼쳐 국익을 관철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겠다고 선언했다. 주변 4국과의 협력외교를 강화하고 ‘동북아더하기 책임공동체’를 형성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하지만 집권 3년 차를 맞은 시점에서 현실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도록 압박하는 외교적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그러자면 미국과 함께 일본이나 중국·러시아를 설득해 비핵화 협상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도록 외교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는 멀고도 험한 길이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현실에 입각한 실리를 앞세워 근린외교를 재건하는 일이 급선무다. 외교는 국익이 우선이다. 정치 지도자라면 더 이상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국익을 앞세워 대한민국을 계속 전진시켜나가야 한다. 때로는 국민들과 대화하고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할 것이다. 이제는 어떤 식으로든 답을 내놓아야 할 때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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