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공감]하루가 실망으로 가득찰지라도

“앞으로도 외로울 것이다. 현실은 계속해서 돈으로, 세월로, 그 무엇으로 압박할 것이고 부모님의, 친척들의, 친구들의 눈치를 보는 것도 괴로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자신이 만든 따뜻한 정원 안으로 모두를 초대할 날을 기다린다. 조금씩 나무를 심고, 돌멩이를 골라내고, 물길을 내면, 그렇게 논문을 쓰고, 좋은 강의를 하고, 혹은 그림을 그리고, 시나리오를 쓰면 나의 정원이 완성될 것이다. 나무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실망스러운 곳일지라도, 괜찮다. 계속해서 그곳을 가꿨다는 자체로 존경할 만한 정원사다.” (309동1201호,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2015년 은행나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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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작가가 쓴 르포 한 권이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지방대 시간강사인 그는 자신의 주소지로 필명을 삼았다. 실제로 대학사회에서 그는 이름이 없었다. 교수는 그를 “그냥 연구소 잡일 돕는 아이”로 소개했다. 이 책의 파장이 커지면서 그는 대학사회를 떠났다. 작가는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계속 글을 썼다. 훗날 비로소 이름을 밝힌 김민섭 작가의 역작 ‘대리사회’는 그렇게 나왔다. 김 작가는 지금도 가끔 대리운전콜을 잡으며 일한다. 하지만 괜찮다. 그의 정원에는 여전히 이야기의 물길이 출렁거리고 나무가 늘어가니까.


우리는 매일 습관적으로 ‘좋은 하루’라고 인사하지만 오늘도 아마 실망스러운 일이 더 많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호미를 쥐고 흙을 뒤집으며 각자의 인생이라는 정원을 일구는 중이니까. 당신의 정원에 꽃나무가 몇 그루인지, 화려한 과수가 담장 너머까지 늘어져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지 나는 궁금하지 않다. 비록 초라하고 볼품없는 정원일지라도 해충과 뙤약볕을 견디며 흙바닥에서 보낸 시간만으로 당신은 존경받을 만하다. 가끔 대리운전을 하고 매일 글을 쓰는 김 작가는 자신의 독자들에게 이렇게 사인한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우직한 정원사들에게 건네는 안부 인사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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