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쿠바 야구




한국과 쿠바가 맞붙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결승전. 9회말 1사 만루 상황에서 교체 투수 정대현이 던진 슬라이더는 유격수 땅볼이 되면서 병살타가 됐다. 한국이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야구에서 금메달을 따낸 순간이다. 금메달 자체도 감격이었지만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쿠바 야구를 이겼다는 데 더 흥분했다. 쿠바 야구는 말 그대로 아마추어 세계 최강이다. 세계 야구인들의 잔치인 세계야구선수권대회는 쿠바가 우승하지 않아야 뉴스가 된다. 쿠바 야구가 세계 최강인 배경에는 야구의 발상지인 미국과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한 역사가 있다. 쿠바는 스페인의 통치를 받던 1864년 야구를 도입했으며 1866년에는 프로리그를 만들었다. 빠르게 성장한 쿠바 야구는 1880년대가 되면 이미 미국팀과 친선경기를 하는 수준이 됐고 1900년대가 되면 베이브 루스 같은 유명 선수들이 추운 겨울에 몸을 풀기 위해 따뜻한 쿠바에서 야구를 할 정도가 됐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1947년 흑인 선수인 재키 로빈슨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백인리그와 흑인리그로 분리돼 있었지만 쿠바는 이미 1900년부터 야구에서 인종차별을 없애 많은 미국 흑인 선수들이 쿠바에서 경기를 했다. 반대로 쿠바 선수들도 미국에서 야구를 했는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백인 쿠바인은 메이저리그에서 뛰었고 흑인 쿠바인은 흑인리그에서 뛰었다는 사실이다.


피델 카스트로는 1959년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후 미국과의 교류를 끊고 프로야구 대신 아마야구를 육성했다. 당연히 프로 수준의 선수들이 포진한 쿠바 야구는 각종 국제대회를 휩쓸며 무적을 자랑했다. 1990년 구소련의 붕괴 이후 쿠바 경제가 나빠지면서 야구 지원이 줄어들자 선수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1991년 미국으로 망명한 첫 야구선수가 나온 후 망명자가 줄을 이었다. 이들은 국제대회에 출전 중 몰래 팀을 이탈하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쿠바에서 보트를 타고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가 쿠바 선수들의 합법적인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메이저리그와 쿠바야구연맹이 지난해 맺은 협약을 무효화했다. 이 협약은 쿠바와의 국교를 회복한 버락 오바마 정부가 허용한 것으로 트럼프 정부가 취하고 있는 오바마 정책 뒤집기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이렇게 되면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은 쿠바 선수들은 다시 보트 피플이 돼야 한다. 스포츠가 정치에 오염된 또 한 번의 사례로 기록될 것 같다. /한기석 논설위원

한기석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