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나 화제 면에서 올해 최대의 딜(deal)로 꼽히는 아시아나 항공 매각에 투자은행(IB)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오랜만에 등장한 국내 대형 거래이면서 KDB산업은행과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이 매각 의사를 확실하게 밝혔다. 그간 진성 매각 논란이 일던 금호그룹 관련 인수합병(M&A) 중 성사 가능성이 여느 때보다 높으면서 주요 대기업이 몸풀기에 나서는 분위기다.
◇매각주체는 금호·산은 공동=이동걸 산은 회장은 16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매각 주체는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020560)이지만, (산은 등)채권단도 긴밀하게 협의할 수 있는 여러 장치를 뒀다”며 “(내가)매각 태스크포스(TF)팀장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표면적인 매각 주체는 금호그룹이지만 기존 채무에 대한 담보 해제나 신규 지원 등 인수자 입장에서 주요한 조건은 산은이 결정하는 만큼 매각 과정에 관여할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회장은 아시아나의 차입금 성격 규모가 총 7조 원에 달한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흥행 실패를 우려한 듯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아시아나 항공의 부채는 정확히 3조 6,000억~3조 7,000억원”이라며 “(인수자가)모든 부채를 다 갚아야 하는 건 아니고 적정 규모로 자본이 충당되면 일정액의 부채를 끌고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 항공의 지분 가치와 자회사가치, 신규 유상증자 규모를 더하면 인수에는 1조 5,000억~2조원의 자금이 들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회장의 발언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산은은 다음 달 초 금호산업과 매각을 포함한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고 매각 주관사 선정에 나설 계획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산은이 직접 나서면서 대기업 등 주요 인수 후보들이 안심하고 딜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2015년 아시아나 항공을 들고 있던 금호산업이 매물로 나왔을 때 주요 대기업은 박삼구 회장을 의식해 나서지 않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는 얘기다.
◇국내에 파는데 해외IB 필요하나=아시아나 항공은 업종 특성상 해외에 팔 수 없다. 그러나 매각 주관사 후보로는 해외 IB가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일단 IB 업계에서는 금융자문으로는 크레디트스위스(CS)가 유력한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공공기관인 산업은행의 특성상 자문사에 지급하는 수수료 가성비가 중요한데 CS가 탁월한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CS는 최근 산은이 채권단으로 주도하는 M&A 자문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과거 한국항공우주산업(KAI)와 하이닉스부터 가장 최근에는 동부제철의 매각까지 자문을 한 바 있다. 금호그룹의 관련 딜에서도 CS가 대부분 매각 주관사에 이름을 올렸었다. 2015년 산업은행이 금호산업의 구주 50%에 1주를 더한 지분을 박삼구 회장 측에 넘길 당시 뿐만 아니라 지난해 중국 더블스타에 금호타이어 지분 45%를 넘기는 거래도 CS가 도맡아 했다.
특히 CS 기업금융 부문을 이끌고 있는 이경인 대표는 금호그룹의 ‘돈줄’에 가장 밝은 인물이다. 노무라증권 출신인 이 대표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한통운 인수와 매각, 금호의 대우건설 매각, 또 박삼구 회장의 금호석유(011780)화학 지분 매각 등을 자문한 바 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IB가 매각주관을 맡고 국내 IB들은 아시아나를 인수하려는 곳에 인수자문을 맡는 형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수후보를 대신하는 인수 자문단 역시 해외 IB가 우위에 있다. 주요 대기업과 거래 관계가 있는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씨티글로벌마켓증권·메릴린치 등은 인수후보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업 역시 인수경쟁 막판에 정보 싸움을 위해 해외 IB를 선호하는 편이다. 국내 증권사나 회계법인 등 국내 자문사는 여러 대기업과 다양한 거래 관계를 갖고 있어서 특정 대기업만 위해 정보를 제공하기 어렵다. 반면 해외 IB는 이 점에서 자유롭다.
국내 회계법인과 증권사, 법무법인은 나머지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됐다. 국내 회계법인이나 증권사는 공동자문단이나 회계 실사 자문사 자리를 노리고 있다. EY 한영과 세종, 태평양은 산업은행과 금호산업이 기존 자구계획을 세울 때 자문하고 있어서 이번 매각 과정에서도 자문단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 아시아나의 외부감사인이 아니고, 인수 후보인 SK·롯데·CJ의 감사인이 아닌 삼정KPMG와 딜로이트 안진 역시 자문 계약을 따기 위해 총력전을 기울이고 있다. 그 밖에 금호타이어 매각 당시 자문했던 광장도 자문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인수금액 규모가 크다 보니 공동대출인 인수금융 분야도 기대가 높다. 금호산업 인수 당시 자기자본투자(PI)로 거래를 도운 NH투자증권이나 꾸준히 관심을 보여온 KB금융그룹 등에서 분주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구조는 여전한 변수=산은과 금호그룹은 아시아나와 자회사를 묶어 파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인수 후보가 원하면 쪼개 팔 수도 있다고 밝혔다. 에어부산·에어서울 등이 따로 매물로 나온다면 인수후보는 중견기업이나 중형 사모펀드까지 넓어진다. 다만 에어부산 등이 경쟁사에 비해 수익을 내는 이유는 아시아나와 노선을 공유하고 지원부서를 공유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어서, 따로 떼어냈을 때 가치는 떨어질 수 있다.
아시아나 2대 주주인 금호석유화학의 움직임도 주목받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이번 매각에 공동으로 나서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금호그룹의 모태인데다 항공업과 석유화학 간 시너지를 고려해 금호석유화학이 인수자로 나서지 않겠냐는 전망도 내놨다. 그러나 금호석유화학의 여력을 고려하면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그보다는 금호석유화학이 지닌 아시아나 지분 가치를 최대로 인정할 인수자에게 중장기에 매각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금호석유화학은 2009년 금호산업이 워크아웃 대상에서 제외된 아시아나 항공 지분을 1,055억원에 넘긴 이후 보유하고 있다. 15일 종가 기준 평가차익만 730억원에 달한다.
/임세원·김상훈기자 why@sedaily.com